빨간 머리는 아니지만, 저는 오늘 '메리다'입니다

by 정희




머리를 아주 꼬불꼬불하게 파마를 했다. 학교에 근무할 때는 늘 짧게 자르고 파마를 했는데, 정년 퇴임 후로는 미용실 가는 횟수가 부쩍 줄었다. 특별히 누구에게 보일 일도 없어 그냥 놔두었더니, 어느새 머리가 제법 길어졌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귀밑 몇 cm, 학교 규정에 맞춰 머리를 잘라야 했다. 엄마가 직접 잘라 주셨는데, 한쪽을 자르면 다른 쪽이 길어지고, 맞추다 보면 또 짧아지고, 그러다 보니 늘 규정보다 훨씬 짧은 머리로 학교를 다녔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머리를 길러 양쪽으로 묶어 보았다.

어른이 된 후로는 줄곧 파마를 했다. 머리카락이 가늘고 힘이 없어서 조금이라도 풍성해 보이고 싶었다. 그런데 친정어머니는 항상 내 짧은 머리를 좋아하셨다. 머리를 조금만 기르면 "머리가 한 광주리가 됐다"며 싫어하셨고, 짧게 자르고 파마를 하면 "참 예쁘다"라고 하셨다.

그 말을 오래 듣다 보니,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짧은 머리가 나에게 어울린다고 믿게 되었다. 사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긴 머리가 어울리는지, 짧은 머리가 어울리는지.




정년 퇴임 후 길어진 머리를 자르자니 아까웠다. 그래서 그냥, 길게 기른 채로 아주 꼬불꼬불하게 파마를 했다. 만화영화 속 메리다처럼.

빨간색도 아니고 메리다만큼 길지도 않지만, 검은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뻗친 모습이 꼭 닮았다.

어머니가 살아 계셨다면 "너 머리가 아주 한 광주리"라고 놀리시며, 또 짧은 게 예쁘다고 하셨을 것이다.


왜 그렇게 내 짧은 머리를 좋아하셨을까. 어머니만의 미적 감각이었을까, 아니면 직접 가위를 들고 내 머리를 다듬어 주시던 그 시절의 추억 때문이었을까.




난 지금 이 메리다 머리가 마음에 든다. 꼬불꼬불한 머리카락 한 가닥 한 가닥이, 이제야 비로소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나의 마음대로 살아가는 자유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