윷놀이 지옥

by 정희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의 일이다. 명절을 맞아 온 가족이 모여 윷놀이를 시작했다. 네 식구가 두 팀으로 나뉘어 딸과 나, 아들과 남편, 때로는 팀을 바꿔가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웃고 떠들었다.

한참을 놀고 난 뒤 문제가 생겼다. 윷놀이에 제대로 맛을 들인 아들이 계속하자고 졸랐다. 처음엔 귀여웠던 아이의 열정이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지자 식구들은 서서히 지쳐갔다.

그만하자고 달래도 보고 단호하게 거절도 해봤지만 소용없었다. 떼를 쓰는 아이 성화에 결국 온 가족이 밤을 꼬박 새우며 윷을 던져야 했다.


나중에는 꾀를 냈다. '자꾸 이기기만 하면 재미가 없을 거야' 싶어, 일부러 져주기로 한 것이다. 아들 팀이 연신 이기면 금방 흥미를 잃고 물러날 줄 알았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아들은 승패와 상관없이, 그저 나무 막대기가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 자체를 즐기는 듯했다.

우리는 아들이 잠들기 전까지 무한 루프에 갇힌 채 윷판을 지켜야 했다.

딱! 딱! 방바닥에 윷가락이 부딪히는 소리가 마치 환청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명절의 흥겨운 장단이었던 그 소리가, 밤 12시가 넘어가자 취조실의 형광등처럼 점점 눈을 찌르기 시작했다.




다음날도 윷놀이를 조르는 아들에게 결국 항복을 선언한 우리는, 아이를 데리고 친정으로 향했다. "엄마, 제발 얘랑 윷놀이 좀 해주세요. 우리는 이제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어요." 친정어머니는 우리가 던졌던 짜증과 피로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내시며, 아이와 마주 앉아 하염없이 윷을 던지셨다.


끝이 나긴 할까 싶었던 그 지독한 승부는 엄마의 무한한 인내심이라는 벽에 부딪혀서야 비로소 마침표를 찍었다. 실컷 놀고 난 아들은 그제야 윷판을 떠났고, 다시는 먼저 윷을 꺼내오지 않았다.




그 후로 우리 집은 명절에도 윷놀이를 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지만,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다시는 그 처절했던 윷놀이 지옥으로 발을 들이고 싶지 않다는 것을.


이제는 훌쩍 커버린 아들은 그때 일을 기억이나 할까. 요즘도 명절에 TV에서 윷놀이라도 나올라치면, 남편과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조용히 채널을 돌려버린다.

우리 부부는 서로의 눈빛 속에서 그때의 그 처절했던 딱! 딱! 소리를 공유한다.

마침 오늘 명절이라고 와 있는 아들의 얼굴을 보니, 다시금 그날의 '윷놀이 지옥'이 생생하게 스쳐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