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불어 싫은 날

by 정희

1980년대 영화 '바람 불어 좋은 날'은 제목 자체가 냉소다. 이렇게 거친 바람이 부는 날이 좋은 날이라고? 오늘 나는 그 냉소의 진짜 의미를 몸으로 겪었다.




설 연휴 마지막 날, 남편과 안산 탄도항으로 나들이를 갔다. 하루 두 번 물이 빠지면 탄도항에서 누에섬까지 바닷길이 열리고, 섬에는 풍력발전기 세 기가 늘어서 있다고 했다. 운 좋게 물이 빠진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탄도항 가는 길에 창밖으로 넓은 간척지가 펼쳐졌다. 대부분이 산지인 우리나라에서 이런 평야는 쉽지 않다. 한 평의 땅이 곧 생명이고 신분이던 시절, 갯벌을 바라보며 '물만 막으면 땅이 될 텐데'라고 생각했을 선조들이 떠올랐다. 간척 사업으로 늘어난 국토 면적이 서울의 몇 배에 달한다고 하니, 우리는 오랫동안 그 갈망을 실제로 이루어온 셈이다.




누에섬으로 난 바닷길로 들어섰다. 길 옆 시커먼 갯벌에 맑은 물이 흐르는 갯골이 군데군데 보였다. 제주의 용천수가 생각났다. 추위 탓인지 갯벌 생물은 보이지 않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작은 구멍들이 숨을 쉬고 있었다.

문제는 바람이었다. 기온은 영상 6도로 겨울치고는 따뜻한 편이었지만, 맞바람이 몰아치는 갯벌 위에서 그 숫자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귀와 볼이 시리다 못해 아팠다. 작고 미세한 칼로 피부에 계속 상처를 내는 것 같았다. 중간에 몇 번이고 돌아가고 싶었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오기로 끝까지 걸었다.

섬에 도착하니 물은 멀리 나가 있었다. 우리가 물을 쫓아온 기분이었다. 섬은 지형이 바람을 조금 막아주어 한 바퀴를 돌 만했다. 돌아오는 길은 바람이 등 뒤에서 밀어주어 그나마 덜 추웠다.


나오는 길에 경찰이 서 있었다. 곧 물이 들어온다며 더 이상의 입도를 막고 있었다. 카페에서 잠기는 바닷길과 석양을 보고 싶었지만, 연휴 마지막 날의 귀갓길 정체가 머릿속에 걸렸다. 결국 물에 잠긴 누에섬도, 저무는 석양도 보지 못한 채 차에 올랐다.




다음에는 일찍 와서 회도 먹고, 누에섬이 진짜 섬이 되는 것도 보고, 노을도 보자고 약속했다. 몸은 여전히 떨렸지만, 선조들의 땅에 대한 열망을 생각하고 자연의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낸 하루였다.


바람 불어 싫은 날, 결국 바람 불어 좋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