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름을 기다리던 것들

by 정희




마을 사람 모두가 두려워하는 용을, 한 소년이 생일잔치에 초대하러 혼자 산으로 떠난다. 소년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용에게 물었다.

"내 생일잔치에 와줄래?"


이 대목에 이르면 동생은 마치 자기가 초대를 받은 것처럼 손을 꼭 맞잡고 숨을 죽였다.

처음에는 의심하던 용도 소년의 순수한 호의에 감동하게 된다. 용은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그 장면에서 어느새 어린 동생의 눈에서도 눈물이 뚝뚝 떨어지곤 했다.

이 이야기는 우리 집에서도 매일 저녁 펼쳐지곤 했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일이다. 당시 남동생은 너무 어려 글을 읽지 못했다. 그런 동생은 누나인 나에게 늘 이 '용의 눈물'을 읽어 달라고 졸라댔다. 한두 번이야 읽어 주었지만, 매일같이 반복되는 낭독이 나는 차츰 지겨워졌다. 내가 고개를 저으면 동생은 자기 몫의 간식이나 아껴둔 동전을 내밀며 애원했다.



달콤한 유혹에 못 이겨 책을 펼치지만, 얼마 못 가 꾀가 났다. 처음에는 소리 내어 읽다가, 슬그머니 입만 벙긋거리는 '속으로 읽기'를 했다.


"엄마! 누나가 입만 벙긋거리고 소리를 안 내!"


뇌물로 받은 사탕은 이미 내 입안에서 녹아 없어졌는데, 나는 동생을 골린 대가로 어머니의 따가운 눈총까지 견뎌야 했다.



어느 날 보니, 글도 모르는 동생이 혼자 소리 내어 책을 읽었다. 큰 소리로 긴 동화의 내용을 더듬거리면서도 끝까지 읽었다. 산으로 용을 찾기 위해 떠나는 장면에서는 마치 자기가 모험을 떠나는 양 들떠서, 용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는 여전히 눈물을 흘리며 읽었다. 책을 다 읽고 행복해하던 동생의 뒷모습을 기억한다.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동생은 간절하게 그 소년이 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누군가의 다정한 부름을 기다리던 용이 되고 싶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