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애 나눔길’에 들어섰다. 해발 900m 산맥의 등줄기 위에 놓인 이 데크길은, 걷는 자와 유모차나 휠체어 사이에 어떠한 차별도 두지 않는 고른 높이였다. 해발 900m의 산봉우리를 한 바퀴 돌 수 있는 나무 데크 길이었다. 산허리를 단단히 붙잡고 있는 난간을 따라 걷다 보면, 전망대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3.5km의 길을 한 시간 동안 느릿하게 걸었다. 주말의 소란이 거쳐 간 자리에는 평일이 선물한 고요만이 있었다. 우리와 닮은 어느 부부가 이 여행의 유일한 증인이었다.
중간 전망대에서 주변 산들이 보였다. 산 위에 산, 그 너머 다시 산. 세상은 오직 산이라는 단 하나의 언어로만 이루어진 것 같았다. 미세먼지는 선명함 대신 몽환적인 겹침을 선물하며 세상의 경계를 지우고 있었다. 해발 900m에서 주변 산들을 바라보니, 해발 1,000m의 산들이 나와 같은 눈높이에 있었다. 높이 올라오니 높은 것들이 다 같은 위치가 된다. 나를 짓누르던 세상의 높낮이가 사라지자 비로소 마음의 무게가 덜어졌다. 아니, 잠시나마 그 무게가 아예 사라진 듯했다.
사실 이 가벼움을 만나기까지의 시작은 그리 맑지 않았다. 미세먼지가 심한 아침이었지만, 경치가 환상적이라는 소문의 ‘감악산 무장애 나눔길’을 꼭 한번 걷고 싶어 거창으로 길을 나섰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나무들은 아직 제 색깔을 충분히 찾지 못했다. 이미 꽃이 만개한 우리 동네 공원과 달리, 이곳 산자락은 기온이 낮아서인지 봄이 당도하는 속도가 더딘 모양이다.
산을 오르며 보니 과수원이 많았다. 과실수는 마치 분재 같았다. 아직 잎도 나지 않은 나무에 기둥을 세우고 가지를 이리저리 묶어 두었다. 묶인 가지들을 보며 문득, 무언가를 길들이고 착취하는 인간의 오랜 습성이 떠올랐다.
가파른 경사를 차창 밖으로 보았다. 해발 900m라는 아득한 숫자를 이토록 매끄럽게 통과하는 일, 기계가 선사한 이 편리한 등정 덕분에 금세 산정에 닿았다.
발아래 계곡에는 주민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 내려다보였다. 마을을 내려다보며 남편은 우리가 어쩌면 산과 산 사이의 작은 땅에 비집고 들어와 살아온 것 같다고 했다.
무장애길 산책을 마치고 풍력 발전기가 서 있는 언덕에 섰다. 거대한 날개가 바람을 가르며 쉼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쉬잉 쉬잉’ 하는 소리가 생각보다 훨씬 컸다.
주변에 펼쳐진 국화와 구절초 밭이 있었다. 할머니 몇 분이 수다를 떨며 흙을 고르고 계셨다. 머지않아 가을바람이 이 언덕에 불기 시작하면, 사방은 흰 구절초의 파도와 노란 국화로 바다를 이룰 것이다.
다시 서울의 무거운 소란 속으로 뛰어들기 전, 우리는 거창의 한 귀퉁이에서 갈비탕을 먹었다. 비워진 무게만큼 뜨끈한 국물로 배를 채우고 나니, 비로소 다시 시작될 일상을 견뎌낼 기운이 몸속 깊숙이 고였다.
거창은 거친 산맥들 사이, 자연이 인간에게 내어준 쉼표 같은 도시였다. 그 풍경 속에 흐르는 정겨움은, 산 위에서 마음을 비우고 내려온 여행자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돌아오는 길, 대자연 속에 우리가 간신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음을, 멀어지는 거창의 능선을 바라보며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