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컴의 파레토 전략, 당신이 버려진 80%라면?

by 정희

80%를 버리는 기업의 냉혹한 논리

최근 유튜브에서 뉴욕 고급 레스토랑의 인종차별 사례를 접했다. 예약을 했음에도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분위기 좋은 1층이 아닌 2층으로 안내받았다는 이야기였다.

영상 속 당사자는 처음엔 그냥 넘기려 했다고 했다. 혹시 내가 너무 예민한 건 아닐까, 그냥 자리가 없었던 건 아닐까. 하지만 뒤이어 들어온 백인 커플이 아무 말 없이 1층 창가 자리로 안내받는 장면을 보고 나서야 확신했다고 한다.


불쾌했다. 그런데 더 불쾌한 건, 레스토랑 주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그 판단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는 점이었다. 아마 그의 머릿속에서는 이런 계산이 돌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백인 고객이 매출의 80%를 차지한다. 그러니 그들을 우대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리고 그래서 더 불편하다.

이 논리를 기업 전략으로 극단까지 밀어붙인 회사가 있다.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이다.

브로드컴은 VMware를 인수한 후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전체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약 600개의 최상위 엔터프라이즈 고객에게만 집중하고, 나머지 수많은 소규모 파트너와 고객은 과감히 정리했다.

파레토 법칙, 즉 20%의 고객이 80%의 매출을 만든다는 원리를 문자 그대로 실행한 것이다.

이 전략은 처음이 아니었다. 브로드컴은 CA 테크놀로지스와 시만텍을 인수할 때도 같은 방식을 썼다. 광범위한 고객 기반을 수익성 높은 엔터프라이즈 고객으로 축소하고, 불만 고객의 이탈에도 불구하고 영업이익률을 극적으로 끌어올렸다. 결과만 보면 성공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 전략을 보며 자꾸 그 레스토랑이 떠오른다. 돈이라는 기준으로 고객을 나누는 것은 경제학적으로 완벽히 합리적이다. 문제는 이 냉혹한 효율의 논리가 어디까지 정당한가이다.

브로드컴이 잘라낸 80%의 소규모 파트너들을 생각해 본다.

파레토 법칙이 포착하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의 단면'이다. 현재 매출 기여도를 기준으로 줄을 세우면, 상위 20%가 압도적으로 크게 보인다. 그러나 시간이라는 축을 추가하는 순간 풍경이 달라진다.

아마존이 책 사업을 시작할 때, 베스트셀러 몇 권에만 집중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존의 진짜 혁신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팔리지 않는 책들'을 한 공간에 모아, 그 작은 수요들의 합이 베스트셀러를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데 있었다. 이것이 롱테일이다. 꼬리는 길고, 그 길이만큼 무겁다.

브로드컴이 정리한 수만 개의 소규모 파트너 중 누군가는 지금 이 순간 뉴타닉스가 됐던 시절의 뉴타닉스일 수 있다. 또 누군가는 VMware의 빈자리를 채울 오픈소스 생태계의 씨앗을 품고 있을 수 있다. 실제로 브로드컴의 가격 인상 이후, 레드햇과 뉴타닉스 같은 대안 플랫폼들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브로드컴 스스로가 경쟁자를 키우고 있는 셈이다.


파레토는 효율의 언어다. 롱테일은 시간의 언어다. 브로드컴은 효율을 택했고, 시간이 그 선택을 어떻게 평가할지는 아직 열려 있다.


브로드컴은 꼬리(롱테일)가 몸통이 될 가능성을 몰라서 버리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내 임기 안에 그럴 일은 없으며, 당장의 확실한 이익이 우선'이라는 극단적 단기 주의를 선택했을 뿐이다. 이는 결국 장기적 혁신보다 당장의 숫자를 요구하는 주주 자본주의의 서늘한 민낯이기도 하다.


지금의 성공이 미래의 독점적 지위를 공고히 할지, 아니면 새로운 경쟁자에게 기회를 제공할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브로드컴이 잘라낸 80%의 자리는 비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누군가 반드시 그 자리를 채운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10년 후 브로드컴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가 되어 있을 때, 사람들은 비로소 묻게 될 것이다. 그 레스토랑 주인이 2층으로 올려 보낸 손님이 훗날 미슐랭 심사위원이었다면 어떻게 됐을까,라고.

효율은 현재를 최적화한다. 그러나 미래는 늘 지금 무시당한 것들로부터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