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깍두기였다

by 정희

나를 향한 가장 따뜻한 초대, 깍두기

어린 시절, 동네 아이들과 다방구, 꼼꼼이, 술래잡기, 공기놀이, 고무줄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고무줄놀이 중 '꼬마야, 꼬마야'는 두 아이가 줄을 돌리면 나머지 아이들이 박자에 맞춰 뛰어드는 게임이었다.

그 줄이 나에게는 너무 무서웠다. 박자를 놓치면 줄에 걸리거나 맞기 일쑤였다.


'사가닥질'은 고무줄 높이를 점점 높여가며 넘는 방식이었다. 발목에서 시작해 허리, 가슴, 겨드랑이까지 올라갔다. 나는 허리 높이 이상은 거의 넘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놀이에 서툴렀다. 잘하고 싶었지만 몸이 마음을 따라주지 않았다. 편을 나눠 놀 때, 내가 들어가는 편은 나 때문에 질 게 뻔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바로 깍두기였다.

깍두기는 놀이에 영 재능이 없는 아이도 함께 놀 수 있게 해주는 장치였다.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지만 어느 편에도 속하는 존재.

플레이는 승패 계산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게임에 참여해 함께 웃고 즐길 수 있었다.


몇 년 전 《오징어 게임》에서도 깍두기가 등장했다. 구슬치기에서 짝을 구하지 못한 참가자를 진행 요원들은 자동 통과시키며 말했다. "소외된 약자를 버리지 않는 게 옛날 애들이 놀이할 때 지키던 아름다운 규칙."

하지만 그 참가자는 결국 다른 게임에서 끔찍한 방식으로 탈락했다. 배려의 상징이었던 깍두기가 가장 잔혹한 생존 게임에 등장하면서, 그 일시적인 희망은 더욱 쓰라리게 느껴졌다.


내가 어린 시절 경험했던 깍두기는 달랐다. 승자도 패자도 될 필요 없이, 그저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최소한의 배려였다. 친구들을 바라보기만 하던 아이를 향한 가장 따뜻한 초대였다.


오늘 왜 이런 글을 쓰고 싶어졌는지 모르겠다. 아마 곧 명절이 다가와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