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둬도 괜찮다: 나를 위한 감정 노동의 파업

by 정희

나는 오랫동안 멈추는 법을 몰랐다.


상대방의 불안을 읽어내 조용히 소화하는 일, 단정적인 말 뒤에 숨은 외로움을 찾아내 이해하려 애쓰는 일, 관계의 평화를 위해 나의 불편함을 삼키는 일. 이것이 내가 60여 년간 수행해 온 감정 노동이었다.


내 마음의 시계는 늘 상대방에게 맞춰져 있었다. 내가 허용하고 수용하는 태도를 취해야만 관계가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그 과정에서 나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을, 나는 오랫동안 몰랐다.


나는 HSP다. 타인의 감정에 쉽게 감응하고, 미세한 분위기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같은 상황도 더 깊이 받아들이고, 더 오래 품었다. 감정의 파도는 늘 나를 먼저 덮쳤고, 나는 그 안에서 나를 지키는 법을 몰랐다. 그저 버티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나는 더 이상 이해하려 하지 않기로 했다.


그들의 말과 행동을 분석하고, 그 속에 숨겨진 의도를 찾으려 애쓰는 일. 그것은 그들의 몫이지, 나의 몫이 아니었다. 그들의 확신이 나에게 불편함을 주었다면, 그 불편함을 삼키지 않아도 됐다. 그들이 괜찮은 사람처럼 느끼게 해 주려 애쓰는 동안, 나는 나 자신에게 빚을 지고 있었다.


결심이라기보다 소진이었다. 더 이상 쏟아낼 것이 없어졌을 때, 비로소 나는 멈췄다.


멈추고 나서야 보였다.


그들의 단정적인 말이 나를 침범하려 할 때, 나는 조용히 그 말을 걸러낼 수 있었다. "네 생각이 그렇구나. 나는 다르게 생각해." 예전의 나였다면 그 말을 꺼내기 전에 이미 열 번을 삼켰을 것이다.


여전히 세상의 자극은 나를 먼저 건드린다. 민감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 민감함을 나를 지키는 감각으로 쓴다. 나의 경계는 나를 가두는 벽이 아니라, 내가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다.


멈춤 이후의 삶은 때로 고독하다. 그들을 이해하려 애쓰던 자리가 비어 있을 때, 그 공백이 낯설고 서늘하다. 하지만 그 고독 속에서 오래전에 잃어버린 나의 목소리가 조금씩 돌아오고 있다.


나는 그들과의 관계를 미워하지 않는다. 다만 나를 잃어가던 나의 방식을 오래 미워했다.

내가 쏟아부었던 모든 노력과 감당이 나의 역사이고, 나의 힘이다.


이제 나는 그 힘을 나에게 쓰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