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와의 전쟁 기록

by 정희

몇 해 전의 일이다. 우리 집은 동네 공원 바로 옆에 있는 아파트다. 문제는 공원에 서식하는 비둘기 떼였다. 이 녀석들 중 일부가 우리 아파트 단지를 아예 자기네 별장쯤으로 생각하고 몰려들었다.


그해 봄, 비둘기 한 쌍이 우리 집 베란다 에어컨 실외기 밑을 둥지의 적합지로 점찍었다. 어느 날 보니 이미 둥지가 완성되었고, 고이 알 두 개가 놓여 있지 뭔가. 처음엔 생명체에게 해코지하는 게 마음이 불편해서 그냥 두기로 했다. 새끼들은 무사히 부화해서 날아갔고, 우리는 생명체에 대한 사랑을 실천했다고 뿌듯해했다.


하지만 그들이 떠난 후 남은 자리는 그야말로 쓰레기 처리장이었다. 둥지 쓰레기와 비둘기 똥이 거대한 배설물 산을 만들고 있었다. 처음의 애틋함은 온데간데없고 분노가 활화산처럼 솟아올랐다. 실외기 밑을 대청소하며 "다시는 호의를 베풀지 않으리!" 하고 이를 갈았다.


문제는 비둘기들의 번식 속도였다. 청소를 끝내기가 무섭게 녀석들이 다시 찾아와 알을 낳으려 했다. 그래, 이제부터는 비둘기와의 전쟁이었다.


1차전, 강아지 모형 인형을 실외기 위에 올려놓았다. 처음엔 비둘기들이 깜짝 놀라는 것 같았다. 우리가 이긴 줄 알았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녀석들은 그 인형 옆에 태연하게 앉아 있었다. '움직이지 않는 바보'라는 사실을 빠르게 학습한 것이다. 누가 새의 머리가 나쁘다고 했던가.


2차전, 큰 바람개비를 설치했다. 번쩍거리고 돌아가면 놀라겠지. 역시 처음 잠시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비둘기들의 적응력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쯤 되니 비둘기의 IQ가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3차전, 비둘기가 둥지용 나뭇가지를 가져올 때마다 즉시 파괴하는 원시적인 전술로 돌아갔다. 그러자 이 끈질긴 녀석들은 재료가 없자 그냥 바닥에 알을 낳아버렸다. 더 이상 마음이 약해지지 않았다. 알에게는 미안하지만 화단으로 보내버렸다.


그래도 계속 왔다. 비둘기는 '복수는 반드시 한다'는 신조를 가진 것 같았다. 온 가족이 이 전쟁에 시달렸다. 외출할 때면 "비둘기가 집을 점령할 수도 있으니 잘 지키라!" 하고 신신당부했다. "융자도 다 안 갚은 집을 비둘기에게 빼앗길 수 없다"는 각오는 우리 집의 가훈이 되다시피 했다. 퇴근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비둘기 둥지용 나뭇가지 치우는 일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비둘기가 싹 사라졌다. 우리는 드디어 승리했다고 자축했다.


하지만 승리의 주인공은 우리가 아니었다. 바로 까치였다. 까치가 동네에 등장하자 비둘기들은 공원에서만 겨우 몇 마리 보일 뿐 우리 단지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유해 조류를 몰아낸 건 고맙지만, 까치 역시 만만찮은 녀석이었다. 둥지 피해는 덜하지만 성질은 더러운 폭군이었다. 그래도 까치가 울면 좋은 소식이 온다고 하니, 대충 좋은 징조라고 믿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