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위축된다. 처음엔 경계를 풀고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불쑥 비난과 독설이 쏟아져 나오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 나는 어설픈 거짓말이나 구차한 변명으로 상황을 모면하려 한다. 그 순간의 내가 너무 나답지 않다는 게 제일 속상하다.
이런 행동의 뿌리를 생각하다 보면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초등학교 5학년 여름 방학, 어머니는 형편이 넉넉지 않은데도 수영 강습을 보내주셨다. 운동을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수영을 정말 못했고, 수업을 좀처럼 따라가지 못했다. 강습을 다녀오면 어머니는 매일 얼마나 배웠는지 물어보셨다. 나는 실망시켜 드리고 싶지 않아 거짓말을 했다. 웬만큼은 따라가고 있는 것처럼.
그 거짓말이 어머니를 향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나 자신을 향한 것이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다만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해야만 할 것 같은 강박이 내 안에 자리 잡은 게.
어른이 되고 나서 그 강박을 다루는 법을 하나 배웠다. 개한테서.
결혼 후 주택 2층에 살 때, 옆집 개가 유독 나에게만 무섭게 짖었다. 원래 개를 무서워하는 터라 늘 피해 다녔는데, 어느 날 너무 화가 났다. 나는 개와 눈싸움을 시작했다. 개가 눈을 피할 때까지 쳐다봤다. 안전거리를 확보한 상태였다. 결국 개가 눈을 피했고, 그 후로는 다시는 나를 보고 짖지 않았다.
인간관계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비난과 잔소리로 나를 위축시키는 사람 앞에서 눈을 피하지 않는 것. 단, 안전거리를 확보한 상태에서. 그렇지 않으면 내가 먼저 다친다.
생각해 보면 잔소리를 퍼붓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삶의 문제를 외면한 채, 통제하기 쉬운 것에 에너지를 쏟는 사람들이다. 공부가 하기 싫어 시험 기간에 책상 정리부터 시작하는 것처럼. 그러니 그 잔소리를 온전히 내 것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이제는 그 무게를 조금 내려놓고 싶다. 누군가의 시선 때문에 억지로 펼쳤던 공작 꼬리를 접고, 안전거리를 둔 채 그냥 내 길을 걷는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