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한 하루에도, 누군가를 위해 정성스레 굽는 마음

가게, 그림, 장보기, 실패한 케이크까지… 마음을 담은 하루

by Heedo Shin

#가게일상 #요리선물 #브런치기록


[오늘도 루스트에서]


2025년 3월 22일, 토요일.


사소한 행동들이 쌓이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 마음을 덜기 위해 무언가를 만들고, 정리하고, 누군가를 위해 요리해본 하루였다.


요 며칠 동안 가게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보면, H 누나의 행동 하나하나가 많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많고, 날이 갈수록 그 정도가 더 커지고 있다. 오늘 아침에도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어제 H 누나는 가게에 머물며 테이블에서 노트북 작업을 하고 갔는데, 사용을 마친 뒤 원래 보관하던 계산대 데스크에 다시 정리하지 않았다. 노트북을 그대로 테이블 위에 둔 채 충전만 시켜놓고 나가버렸고, 이후에도 충전 상태로 계속 방치해 두었다. 이런 사소한 부분들에서부터 무심함이 느껴졌다.


오늘은 H 누나가 아침에 할 일이 있다고 하여, 나와 함께 집에서 가게로 일찍 나왔다. 그녀는 할 일을 마치고 다시 들어왔다가 12시 30분쯤 운동 일정으로 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내 근무 시간인 오후 3시까지 희재 누나는 돌아오지 않았고, 나와 주방을 담당하는 R 누나가 가게의 모든 일을 처리했다. 점심시간 동안 손님이 많아 정신이 없었지만, 결국 모든 일을 무리 없이 해냈다.


KakaoTalk_20250407_121234362.jpg 루스트에서의 점심 피크타임, 정신없는 주문을 마무리하고 배달 픽업을 기다리는 순간


오후 3시쯤 아르바이트생 A가 출근했고, 나는 그 시간부터 J에게 선물할 그림을 계속 그려나갔다. 원래 계획은 수채화 물감으로 색칠까지 모두 완료된 작품을 주는 것이었지만, 일단 연필을 이용해 우리가 함께 나온 사진을 따라 그렸다. 이후 집에 돌아가 물감 작업을 하려 했으나, 시간이 부족했고 연필로 그린 그림도 내 눈에는 충분히 좋아 보여 그대로 마무리하기로 했다.


3시 30분보다 조금 이른 시각에 아빠가 가게에 도착했다. 아빠는 나를 집에 데려다주시기로 했고, 나는 J에게 요리를 해주기 위해 집에 가는 길에 다이소와 제스코마트에 들러 장을 보았다. 필요한 재료들을 챗GPT를 통해 미리 조사해 놓았고, 여러 가지를 구매했다. 제스코마트에서는 집에 어떤 재료가 있는지 엄마에게 전화로 여쭤보았지만, 집에 재료가 거의 없다며 집 반찬용으로도 쓸 수 있는 재료들을 더 구매하라고 하셨다. 그렇게 장을 보다 보니 총 10만 4천 원이 나왔다. 예상보다 많은 금액이라 당황스러웠고, 나는 H 누나가 빌려준 카드로 결제하려 했다. 해당 카드는 내가 급여를 받은 후 소비한 만큼을 차감하기로 한 것이었다.


H 누나는 10만 원이 넘으면 3개월 할부를 하라고 했으나, 한도 초과로 결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H 누나에게 전화했고, 누나는 한 달 한도가 100만 원이라며 벌써 다 썼을 리 없다고 말했다. 당황한 상황에서 아빠가 대신 결제를 해주시며, "아들이 요리를 한다니 선물이라 생각하라" 고 말해주셨고,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집에 도착한 후, 배가 고파져 엄마가 미리 해동시켜두신 삼치구이를 챗GPT 레시피에 따라 조리했다. 삼치에 소금과 후추, 올리브유를 살짝 뿌려 에어프라이어로 구웠고, 나머지 삼치는 소분해 비닐팩에 담아 냉동 보관했다. 베이컨과 여러 채소도 볶아 함께 곁들여 먹었다. 이렇게 준비하는 데 예상보다 시간이 더 소요되었고, 계획보다 늦은 시각이 되어 케이크 빵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박력분을 사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급히 편의점에 갔지만 박력분은 없었고, 중력분만 있었다. 당황한 나는 챗GPT에 다시 물었고, 중력분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답을 받아 레시피대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븐 없이 팬에 굽는 방식으로 진행한 결과, 기대했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빵이 나왔고, 특히 아랫면은 중불에서 너무 오래 구워져 완전히 타버렸다. 그 부분을 잘라내고 남은 부분만 락앤락 통에 담았다.


KakaoTalk_20250407_121234362_01.jpg J를 위해 만들었지만 결국 태워버린 빵, 그래도 마음만은 온전히 담고 싶었다


이어 휘핑크림을 만들기 위해 생크림과 설탕을 섞고 손으로 숟가락을 사용해 저었지만, 휘핑기는 없었고 손 휘핑으로는 진전이 거의 없었다. 시간이 많이 지났음에도 크림도, 빵도 제대로 완성되지 못했고, 나는 결국 더 늦기 전에 잠이라도 자야겠다는 생각으로 재료들을 챙겨둔 뒤 서둘러 잠자리에 들었다.


KakaoTalk_20250407_121234362_02.jpg 몇 주 전 T 아뜰리에에서의 나. 파운드케이크는 몰라도 마음은 누구보다 진지했던 그날의 기록. (통통해도 괜찮아, 마음이 더 묵직하니까.)


완벽하지 않아도, 마음을 담은 하루였다는 것.

그 마음은 결국 어디론가 도착하리라 믿으며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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