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맨 만큼 내 땅이다

나의 장점과 단점

by 애나풀리

추진력이 강하다는 것, 나의 장점이다. 스무 살 때부터 주변 사람들을 만나면 늘 들었던 말이 있다. 예진아,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네가 제일 바빠. 그 말이 기분 좋았다. 바쁘고 치열하게 사는 것이 나의 쓰임이 많다는 증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워낙 새로운 일을 벌이는 걸 좋아한다.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대부분 다음날 첫걸음을 떼어버린다. 일단 시작하고 본다. 앞으로의 일들을 예상하며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닥쳐오는 일들을 해치워가며 걸음을 옮기는 편이다.


반면 예민한 것, 나의 단점이다. 남들보다 감정의 역치가 낮다. 쉽게 행복해지고, 쉽게 괴로워진다. 초등학생 때부터 만성 두통을 달고 살았는데 대학 병원에서 그 어떤 검사를 해도 원인이 나오지 않았다. 겨우 들은 말이라곤 기질적으로 예민해서 그렇단다. 스스로 예민함을 인정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예민한 사람이 되기 싫어 무던한 척을 했지만, 결국 나는 예민하게 태어난 사람이었다. 예민함은 때로 나를 괴롭혔지만, 동시에 나를 기민하게 움직이게 하는 힘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늘 바쁘고, 늘 무언가를 시작할 작정이었다.


그 무렵 나는 아나운서를 준비하고 있었다. 공채가 뜰 때마다 지원서에 넣을 포트폴리오 영상을 찍었고, 그때마다 수십만 원이 들었다. 방송사마다 원하는 이미지와 시험 원고가 다르기에 같은 영상을 재활용할 수도 없었다. 헤어, 메이크업, 의상 대여, 스튜디오 촬영까지. 아르바이트비를 탈탈 털어 만든 영상으로 서류 전형에 합격이라도 하면, 면접을 보러 가기 위한 비용이 또 들었다. 돈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아나운서 준비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온라인 의류 판매를 시작했다. 사업자 등록부터, 동대문 사입, 상품 촬영과 등록, 모든 것이 일사천리였다.


처음 물건을 팔아본 경험은 짜릿했다. 어쩌면 나는 이때부터 나의 추진력을 특별히 여겼던 것 같다. 특출난 예민함으로 내 안의 불안이 스위치처럼 탁 켜지는 날이면 어김없이 새로운 일을 벌였다. 지금 하는 일이 아니더라도 내가 기꺼이 해낼 수 있는 일이 어디에 있을지 바삐 탐색했다. 그렇게 열을 올린 추진력은 나를 이곳저곳, 낯선 곳에 쉬이 데려다주었다. 조연출이 되어 밤새 편집을 하기도 하고, 영업사원이 되어 실적 압박을 견디기도 하며, 전국의 군부대를 누비며 강의를 하기도 했다. 쓸모없는 경험은 한 톨도 없었다.


예민함과 추진력 덕분에 나는 마음껏 서식지를 옮겨 다녔다. 헤맨 만큼 내 땅이라는 말이 있던데, 그렇다면 이미 나는 땅부자가 되었을 것이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일이 언제나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내 삶에서는 부딪혀보고 직접 깨져보는 과정이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린다. 그저 내가 살아가는 방식인 것이다. 여전히 어디로든 갈 수 있도록 마음을 달구고 불씨를 지핀다. 그 시간들이 빚어낸 내가 썩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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