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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김이로
Feb 26. 2023
12.24km를 걸은 뒤 낮잠 까무룩
오른손 검지손가락을 한 일자 모양으로 만들어서 속눈썹 위로 가져가 좌우로 마구 문지른다.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손이 천천히 중력 때문에 바닥을 향해 내려간다.
이내 스마트폰이 툭 하고 이불 위로 떨어지는 소리에 놀라서 잠깐 눈을 크게 뜨지만 결국 아틀라스의 형벌보다 더 무겁다는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고 잠에 꼬르르 빠지고 만다.
오늘은 주말이니까 충분히 늦잠을 자도 괜찮은 날이었다.
그렇지만 8시 30분에 일어난 이유가 있었다.
여의도에서 열리는 2023 챌린지 레이스, 마라톤이 열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이 마라톤에 참가 신청을 따로 한 건 아니고, 4월에 열리는 벚꽃 마라톤에 가기 전 한번 어떤 식으로 경기가 진행되는지 눈팅도 하고 걷기 연습도 할 겸 남편과 함께 나서기로 한 날이다.
얼른 일어나서 어제까지 먹다 남은 식빵 한 조각을 입에 털어 넣고 씻은 뒤 여의도로 향했다.
여의도까지 평소에 갈 일이 없기에, 멀리 나간 김에 근처에 맛있는 식당이 있는지 검색을 했다.
여의도에서 조금 더 강서 쪽으로 가면 등촌역 앞에 등촌깨비시장에 2대 맛집이 있다고 나왔다.
하나는 저렴한 가성비 탕수육으로 유명한 <할범탕수육>, 나머지 하나는 그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다는 떡볶이 맛집 <할아버지떡볶이>였다.
원래는 여의도에서 내려서 마라톤 운영 부스를 구경하고 걸을 예정이었는데 동선을 바꿨다.
배가 좀 고프기도 했고, 집과 가까워지는 방향으로 걷는 것이 뭔가 좀 더 좋을 것 같아서 등촌역을 먼저 갔다.
시장 끝자락에 위치한 <할범탕수육>은 몇 년 전까지는 이천 원 이었는데 얼마 전에 삼천 원으로 올랐다고 한다.
탕수육 2인분과 깨비강정 1컵을 시켰다.
깨비강정은 이천 원이고, 맛은 피카츄 돈가스와 비슷한데 이 것을 동그란 팝콘강정 모양으로 바꾼 것 같았다.
탕수육은 이미 튀겨져서 보관하던 것 위에 소스만 뿌려서 내주시는 것 같다.
한 번 더 튀겨서 주시면 더 따뜻하고 바삭해서 맛있을 것 같은데 그 부분은 다소 아쉬웠다.
하지만 가격대비 양은 전국 어디에서도 비견할 바가 없을 것 같다.
2인분에 육천 원인데, 이 양을 넓은 접시에 펼치고 옆에 양배추채 샐러드를 올리면 일반 중국집에서 만 오천 원에 파는 탕수육 소자와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옆 테이블에서는 이천 원 짜리 국수를 많이 시켜 먹던데, 탕수육과 깨비강정을 먹으면서 목이 좀 막혀서 국수를 하나 시킬까 하다가 꾹 참았다.
이 음식들을 다 먹은 후에는 곧바로 열 걸음 떨어진 <할아버지떡볶이>에 가서 또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아쉬운 대로 탕수육 식사를 마치고, 바로 떡볶이를 먹으러 향했다.
무엇을 먹을까 하다가 떡볶이 1인분과 어묵 2개를 먹기로 했다.
홀 아르바이트생이 아직 오지 않아서 홀에서는 먹을 수 없다고 하셔서 어묵 다이가 있는 바깥에 서서 먹겠다고 했다.
어묵을 먼저 먹고 있는데 떡볶이를 주러 오신 사장님이 너무 추울 것 같다고, 손님들만 안에 들어와서 드시라고 배려해 주신 덕에 따뜻한 홀에서 먹을 수 있어서 감사했다.
이 떡볶이는 상당한 인상을 내게 남겼다.
그 어디서도 맛보지 못한 맛이었다.
맛을 좀 설명해 보자면 고추장보다는 고운 고춧가루 베이스의 떡볶이 같고, 설탕보다 물엿의 맛이 더 강하게 나는 떡볶이였다.
경험상 물엿은 밀떡보다는 쌀떡과 함께 조리되는 것을 많이 보았고, 국물 떡볶이의 질감보다는 꾸덕하게 떡을 감싸는 끈적한 질감으로 많이 봤었다.
근데 참으로 특이하게 이곳은 밀떡을 쓰고, 물엿 맛이 많이 나는데도 국물이 자박하니 신기했다.
고춧가루 풋내도 분명 나는데 그게 맛을 해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이 집의 매력 요소로 다가왔다.
요즘 떡볶이 시장은 엽떡류(매움 및 양 극대화), 신전류(후추 극대화), 일반 동네 학교 앞 떡볶이 총 3가지 종류로 일원화되는 느낌이었는데 <할아버지떡볶이>는 이 중 그 어느 카테고리에도 속하지 않는 특별한 맛이었다.
멀리 와서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들을 먹으니 만족스럽고 걸을 힘이 솟았다.
등촌역에서 한강 쪽으로 걸어와 마라톤 코스를 걸었다.
오직 본인의 몸에만 의지해서 쉬지 않고 뛰며 옆을 지나치는 마라토너들을 보면서 실로 경이로운 감정을 느꼈다.
존경스러웠고 멋졌다.
우리는 마라톤 코스를 다 걷지는 못했지만, 오늘 총 걸은 거리는 12.24km, 걸음 수는 17,082 걸음이었다.
많이 걸어서인지 집에 와서 오꼬노미야끼를 만들어 먹고 나서 거실 매트에 누웠더니 너무나 달콤한 낮잠의 유혹이 왔다.
밤에는 자고 싶어도 잠이 안 올 때가 많은데 역시 몸을 혹사(?)하듯 써야 잠이 잘 오는군.
전에 애매한 시간에 낮잠을 2~3시간 자는 바람에 밤에 곤욕을 치른 적이 있어 알람을 1시간만 맞추고 잤다.
달고나도, 탕후루도, 이 달콤한 낮잠보다는 당도가 낮을 것이다.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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