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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로 Feb 27. 2023

햄버거 먹는데 철수세미 나와서 좋아한 사연



저.. 이거 먹는데
철수세미 나왔는데요...

잠시만요..
(뒤에 주방에 다녀온 후)
죄송합니다.
다시 만들어 드릴게요..






요새 햄버거를 많이 먹게 됩니다.


수업과 수업 사이, 식사를 빠르고 간편하게 해결하기 좋은 음식이고요.


꾸준히 헌혈을 하는데 헌혈 상품으로 햄버거 교환권을 종종 받거든요.


햄버거는 일 년에 한 번 먹을까 말까 한 음식이었는데 이번 겨울방학에는 정말 자주 먹었어요.




이제 이번주 목요일부터는 새 학년 새 학기 개학입니다.


긴 방학 동안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느라 고생한 보호자들은 쾌재를 부를 것이고요.


저처럼 이제 개학하면 출퇴근시간이 늦어지는 학원강사들은 아쉬워합니다.


저녁이 없는 삶을 사는 강사들에게 수업 시간이 빨라지는 방학 기간은 체력 보충 겸 사람답게(?) 사는 유일한 기간이거든요.


개학 후에는 아예 저녁식사시간이 없기에 이제 햄버거도 안녕입니다.



오늘 마지막 만찬(?)을 위해 햄버거가게를 찾았습니다.


매번 먹는 세트를 시키고요. 


콜라는 양심상 제로콜라로 고릅니다.


자리를 잡은 뒤 화장실에 다녀왔습니다.


학원가에 있는 가게라 원래 학생이 많은데, 지난주에 방학특강이 끝난 학원들이 많거든요.


그래서인지 꽤나 매장이 한가했어요. 


문한 세트가 나와 가지러 가서 케첩을 하나 더 요청합니다.


케첩은 2개가 진리잖아요?


케첩 1개는 감자튀김을 먹는데 부족해요.


자리로 돌아와 햄버거를 신나게 먹으면서 핸드폰을 합니다.


버거를 절반 보다 조금 더 먹어갈 때쯤, 아쉬워하며 먹기 편하게 햄버거의 위치를 바꿔서 잡았어요.


이 세트는 맛도 좋고 다 좋은데 양이 아주 살짝 부족하거든요.


햄버거가 좀 작은 편이라서요.


그래서 어떨 때는 사이드메뉴를 추가해서 시켜 먹기도 하고요.


남은 건 아껴 먹어야지~ 하면서 햄버거를 돌려 잡던 그때, 포장지에서 시선을 강탈하는 그 무언가...


등골이 쭈뼛 서게 만드는 익숙한 그것...


철수세미였습니다. 



침착하고, 우선 사진을 찍어 증거를 남기고, 그대로 가지고 카운터로 향했습니다.



나: "저.. 이거 먹는데 철수세미 나왔는데요..."


직원: "잠시만요.. (뒤에 주방에 다녀온 후) 죄송합니다. 다시 만들어 드릴게요.."


 잘못은 주방에서 했는데 카운터 알바가 죄송하다 하는 게 좀 이해가 안 갔지만요, 고개를 끄덕하고 자리로 돌아와 앉았습니다.


저는 비위가 강하거든요.


벌레(으!)가 아닌 이상, 철수세미 하나, 머리카락 하나 나왔다고 해서 고팠던 배가 차거나 군침 흘리던 입맛이 뚝 떨어지는 경우는 좀처럼 없습니다. (저는 강인합니다.)


저희 아버지는 비위가 약하셔서 머리카락 나오면 밥상에서 엄청 뭐라고 하시거든요. 


이건 사람마다 역치가 다른 거니 제가 옳은 것도 아니고 아버지가 틀렸다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사람마다 다른 거지요. 


아마 글 읽으시는 분들 중에서도 '윽. 나는 비위 약해서 더 못 먹었을 것 같은데..' 하시는 분들도 계실 거고 당연히 이해도 합니다.


그러나 비위가 강하고 역치가 높은 저는 오히려 기분이 좋았습니다. (훗)


햄버거 절반 먹었는데 새로 하나를 주잖아요. (하하)



아싸.
절반 먹고
또 하나
새로 먹으니까
배부르겠다.
히히.


애매한 양이 딱 맞는 양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또 혹시라도 아이들이 먹다가 발견 못하고 삼켰다면 위험할 수도 있었는데 예리한 저의 매의 눈에 포착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사실 그냥 단순히 하나 더 주니까 좋았던 건데, 이것만 쓰면 좀 부끄러우니까 명분 좋은 다른 이유도 억지로 생각해 냈습니다.)


저는 의견을 아주 강력하게 주장하는 편이 아니니, 아르바이트생들도 겁에 질려 서비스업이라는 이유만으로 저한테 지나친 윽박지름 같은 걸 당하지도 않았고요. (그냥 진짜 감정 없이 딱 저렇게 말했습니다.)


다만 모두를 위해서도, 다음에 같은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위생 개선이 필요한 건 사실이니 공식 홈페이지에 고객의 소리를 남겨야겠지요.


뭐 매장 담당자를 혼내라는 게 아니고요.


적절한 조치를 이미 받았으니 보상은 필요 없고 다만 위생에 좀 더 신경 쓰라는 고객의 소리요.


덕분에 지금 배가 무척 부르고요.


방학 마무리, 최후의 만찬을 좀 특이한 방식으로 배 터지게 먹었네요.


뭐 저 스스로가 만족스러우니 된 거 아닐까요.


으어. 개학 안 했으면 좋겠어요.


낮에 근무 너무 좋았는데... 흑...


재수 전문 학원, 재수 기숙학원 가면 낮 근무 할 수 있는데 여긴 채용이 알음알음되기도 하고 실력도 아주 좋아야 한대서 부럽기만 합니다.




이제 개학하면 햄버거도 안녕이네요.


공강이 없이 5시간을 쭉 수업할 저는, 이제 햄버거와 이별하고 두유에게 곧바로 환승해야 하는 환승연애러가 됩니다.


여름방학 때 다시 돌아올게.

조금만 기다려줘.

하면 나쁜 연인이겠죠?


이런 말 할까 봐 정 떼고 가라고 햄버거가 저에게 철수세미를 투척했나 봅니다. ㅎㅎㅎ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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