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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로 May 01. 2023

내 배가 나룻배가 아닌 크루즈선이었다면


오늘을 마지막으로 담당하던 모든 학생들의 중간고사가 끝났습니다.


본문을 외울 시간이 없다며 결국 못 외우고 들어간 Y는 다행히 1문제만 틀려서 94점을 받았습니다.


항상 100점 아니면 1문제만 틀리던 J는 이번에 시험범위에 포함되지 않은 랜덤 외부지문에서 선택지 단어가 어렵게 나오는 바람에 3개나 틀렸다며 슬퍼합니다.


매번 60점대를 넘지 못하던 K는 이번에도 역시 60점 턱걸이를 했고요.


성실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학생인데 이 학생을 가르치는 내가 부족한 탓을 합니다.


오늘도 수업을 하면서 스스로가 답답했어요.


조는 건지 의욕이 없는 건지 아주 짧은 문장 하나를 해석하는데 5분 동안 헤매는 녀석을 보니 속이 뒤집어 지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상냥한 목소리로 다시 해보자고 합니다.


너무 상냥해서 문제인 걸까요?


근데 화낸다고 학생이 할 것 같지가 않아서요.


결국 나의 내공이 부족한 탓을 해 봅니다.


아이에게 화 내지 않고 논리적이면서 감성적으로 (?) 설득할 수 있는 묘수가 있다면 참 좋을 텐데요.


만약 다른 선생님이 가르쳤다면 70점, 80점 받을 수 있는데 나를 만난 바람에 이렇게 60점에서 허덕이고 있는 건 아닐까요.


내가 좀 더 부지런하면 더 좋은 자료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좀 더 욕심을 가졌다면 아이를 채찍질하며 단어 하나라도 더 외우게 했을 텐데.




아이들은 시험이 끝나고 나서 홀가분하겠지만 가르친 입장에서는 아이들의 성적표가 제 성적표이기도 해서 책임감이 막중하고 고민의 시간이 시작됩니다.


결국 공부는 학생 본인의 몫이라지만 학생을 태우고 대항해를 하는 내 배가 나룻배가 아닌 크루즈선이었다면...


아이들이 가정에서 금수저로 태어나지 않았더라도, 영어과목 만큼은 강사인 내가 아이들을 위한 금수저 동아줄을 내려주었더라면...



아마도 맡은 아이들보다 내가 더 후회와 반성을 하는 밤입니다.


좀 더 바쁘고 나쁜 강사가 되어야겠습니다.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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