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댕이를 때리고 싶다. 아이돌들의 무대 영상을 유튜브에서 볼 때마다 "이 멤버는 춤을 좀 못 추는 것 같네"라고 말했던 나의 주둥이를 심히 치고 싶다.
나는 케이팝을 좋아한다. 특히 여자 아이돌을 좋아한다. 한 그룹을 깊게 좋아하기보다는 고루고루 얕게 다 좋아한다. 있지, 오마이걸, 트와이스, 블랙핑크, 마마무.. 틈이 날 때마다 이들의 무대 영상을 유튜브에서 찾아보곤 한다. 아이돌 좋아할 나이는 지나지 않았냐는 말을 들을 수도 있지만 남에게 피해 주는 것도 아니고, 요즘은 어르신들도 임영웅 팬카페 가입하고 멜론에서 음원 스밍* 돌리는 시대인데 뭐 어떤가. 오마이걸의 Dun Dun Dance, 트와이스의 Alcohol-free는 무대 영상을 10번씩도 더 넘게 돌려 본 것 같다. 신나는 노래를 부르면서 화려한 군무를 추는 모습을 보면 나까지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스밍 돌리다: 스트리밍 돌리다의 줄임말로, 해당 가수의 노래가 음원 차트에서 상위권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반복해서 노래를 재생하는 행위. 노래의 재생 횟수가 늘어나면 인기 지수가 올라 차트 상위권으로 점차 올라갈 수 있다.)
코로나가 있기 전인 2019년 12월. 나는 줌바댄스를 처음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30대가 되고 나서는 생존을(?) 위해서 운동에 대한 갈증이 항상 있었다. 요가나 필라테스는 재미가 하나도 없어서 한 두 달 다니다 말았다. 그나마 천장에 매달려있는 해먹을 이용해서 다양한 동작을 배우는 플라잉 요가는 재미있었지만 가격이 좀 비싼 편이었다. 그러다 음악에 맞추어 어렵지 않은 동작을 추는 줌바댄스를 알게 되었다. 왠지 줌바댄스는 '촌스러운 에어로빅' 같은 편견을 가지고 있어서 망설였던 게 사실이다. 그래도 동네 공립 스포츠센터에서 배우는 강좌라 가격이 매우 싸서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과감하게 3개월 치를 등록했다.
아, 나는 인생 운동을 만나고야 말았다. 월, 수, 금 아침 9시부터 10시까지 진행되는 수업에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12월과 1월을 보냈다. 동작들은 어렵지 않았다. 몸치인 나도 첫날에 어깨너머로 배우면 충분히 따라 출 수 있는 수준이었다. 나는 줌바댄스 월수금 반의 막내였다. 내가 들어오기 전에는 스포츠센터 맞은편 푸르지오 아파트에 사는 40세 언니가 막내였다고 했다. 힘과 열정이 넘치는 50대 언니들이 선생님 바로 뒷 줄 가운데인 센터 자리를 차지했다. 나는 총 세 줄 중 두 번째 줄 오른쪽 중간 정도에 서서 췄다. 가끔은 너무 신이 나서 의식적으로 동작 크기를 줄여야 할 정도였다.
뒤의 이야기는 뻔하다. 2020년 1월 말 코로나가 마수를 뻗으면서 2월 개강은 일주일 미뤄졌다. 일주일 뒤에는 또 일주일이 미뤄졌다. 또 다른 일주일이 지나고 나서 스포츠센터는 무기한 휴관에 들어섰다. 그리고 지금 2021년 7월, 스포츠센터는 한정적으로 몇몇 시설과 강좌를 오픈하고 있지만 줌바댄스는 여전히 휴강 상태이다. 3개월 치 등록하고 인생 운동 만나서 2개월을 불살랐는데, 1년 반이 지나도록 마지막 1개월치 수업은 듣지 못하고 있다. 아마 나중에 다시 재개돼서 수업에 나가면 수강생의 절반은 이 동네에서 이사를 갔을지도 모를 지경이다.
나는 다시 운동을 시작해야 했다. 내 기준 재미없는 요가나 필라테스 말고 몸을 많이 움직이는 신나는 운동. 동네에는 줌바댄스학원이 없었다. 비슷한 걸 찾아보다가 점핑 다이어트를 알게 되었다. 가요를 들으며 1인용 방방(봉봉, 퐁퐁이 따위로 불리는 트램펄린)을 타면서 뛰는 운동을 하는 것이었다. 딱 봐도 내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일부 점핑 다이어트 학원에서 다이어트 보조제와 단백질 셰이크를 강매 아닌 강매한다는 후기들이 많아서 패스했다. 아이돌도 좋아하고 줌바댄스도 배웠으니 일반 댄스학원에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 가까운 곳에는 없지만 지하철로 3 정거장 가서 10분 걸어가면 댄스학원이 있었다. 마침 새로 생긴 학원이라 오픈 멤버로 들어갈 수 있었다. 원래 있던 학원에 들어가면 몸치라 춤도 못 추는데 새로 들어와서 주목받으면 부끄러우니까 절호의 찬스였다. 오픈 기념 이벤트로 '2개월 등록 시 1개월 무료'로 등록을 마쳤다. 드디어 케이팝 아이돌 댄스의 세계로 들어가는구나!
수강생은 초등학생 2명, 대학생 1명, 나 1명, 언니 1명으로 총 5명이었다. 선생님과 학생들은 인사를 나누고 첫 곡을 배우기 시작했다. 에스파의 NEXT LEVEL이었다. 손으로 얼굴 주변을 디귿자로 만드는 춤이 유명해서 몇 번 영상을 봤던 곡이었다. 선생님의 시범에 맞추어 동작을 배우고 드디어 수강생들이 따라서 춰보는 시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