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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로 Jul 24. 2022

잘 가르치는 강사가 되고 싶지 않아요

「슬기로운 검사생활」을 읽고 학원 강사가 느낀 점

오늘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렸습니다. 요새 스스로의 모습이 맘에 들지 않아서요. 일하지 않는 대부분의 시간에는 누워서 휴대폰 속 의미 없는 콘텐츠만 반복적으로 보고 있더라고요. 생산적인 일은 하지 않고 소비적인 일만 하니 마음이 더 불편하고 시간이 아까웠어요. 팝콘 브레인(Popcorn Brain)이라는 단어를 들어 보셨나요? 인터넷에 검색해 보면 '뇌가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의 빠르고 강렬한 자극에 익숙해져 현실에서의 느리고 약한 자극에 무감각해지는 현상'이라고 나옵니다. 그래서 요즘 생산적인 활동을 해 보려고 6개월 간 놓고 있던 브런치에 글도 써보고, 도서관에 가서 책도 빌려왔습니다.



책을 빌리는 기준은 단순합니다. 완벽주의 강박 성향이 있는 저로서는 어떤 책을 읽을지 신중하게 고르는 행위 자체가 책을 읽는 시간보다 더 걸립니다. 그래서 그냥 도서관으로 달려가서 "최근 신간" 코너에서 제목을 보고 재밌어 보이는 책을 고릅니다. 주제나 분야는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오늘 고른 책은 「슬기로운 검사생활 (글쓴이 뚝검)」, 「쌤, 뭐 하세요? (글쓴이 박성근 외)」, 「인지행동치료 : 원리와 기법 (글쓴이 권정혜)」입니다. 요즘 화제인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영향이기도 하고, 평소 법에 관심이 많아 「슬기로운 검사생활」을 가장 먼저 골랐습니다.



5년 여 간의 검사 생활에서 겪은 여러 사건들과 사건을 처리하며 글쓴이가 느낀 점을 정리하여 낸 책입니다. 이 중에 공감하는 구절이 있어 인용합니다.


《내가 중요한 단서를 놓치는 바람에 무죄가 선고됐을까. 다른 검사였다면 결과는 달라졌을까.... 중략... 선배들이 가끔 사건은 이미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우스갯소리를 하고는 한다. 제아무리 간단해 보이는 사건도 무죄가 날 사건은 무죄가 나니 행여 무죄를 선고받더라도 마음 쓰지 말라는 말이다. -슬기로운 검사생활 p.186 인용》


초짜 강사라는 말로 책임을 회피하기에는 많은 경력, 베테랑 강사라고 하기엔 부족한 경력을 가진 저는 위 구절에 깊이 공감하였습니다. 혹시 내가 아닌 다른 강사에게 배웠다면 이 학생이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지는 않았을까. 교재와 수업 연구를 더 꼼꼼히 했었다면 전달력이 향상되지는 않았을까. 매 수업이 끝난 후 드는 고민입니다. 그렇지만 결국 연구에는 20%의 노력만 기울이고 80%는 비겁한 아래의 혼잣말로 자기 합리화를 합니다.


'학교 다닐 때도 같은 선생님에게 배우지만 1등과 꼴찌가 있잖아. 내가 못 가르쳐서가 아니라, 아이들마다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른 거야. 나는 똑같이 가르치는데 이번 시험에서 준O는 94점 맞았고, 규O이는 69점인 건 내 탓이 아냐. 인터넷 1타 강사 선생님 강의를 듣고 성적 오르는 친구들이 많지만 그렇지 않은 학생도 많잖아.'


부끄럽지만 실제 지금의 제 모습입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20%가 아니라 100%의 수업 연구 노력을 기울인 후에 저런 말을 할 자격이 있지 않을까요? 다시 반성해 봅니다.



그런데요, 핑계를 하나 더 대 보자면요. 사실 제 강사로서의 제1의 지향점은 성적 올려주는 선생님이 아니에요. 제가 지금 맡고 있는 학생들의 부모님이 보신다면 깜짝 놀라서 학원 당장 끊겠다고 말씀하실 저만의 비밀이지요. 잘 가르치는 선생님도 물론 세상에 필요합니다. 그건 저보다 더 강의력이 좋은 교사와 강사에게 맡기고요. 저는 아이들 인생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기억에 남는 강사가 되고 싶어요. 결국 "좋은 사람" 되고 싶다는 착해 빠진 소리이죠. 그래도 그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



제 기억에 남는 학창 시절 선생님은 달안초등학교 4학년 담임이셨던 "네모네모 선생님"입니다. 선생님 성함은 "신승용"으로 기억합니다. 아닐 수도 있고요. 아마 당시에 20대 중반이셨을 거예요. 까무잡잡한 피부에 얼굴이 각진 형태라 아이들끼리 네모네모 선생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지금은 대략 50세일 것으로 추정합니다. 네모네모 선생님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수업을 잘 가르쳐주셔서가 아닙니다.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항상 '관심'을 주셨습니다. 얼음땡과 탈출 놀이를 하고 담벼락에서 용감하게 뛰어내리며 놀던 4학년 여자 아이답게 왈가닥이지만 다소 소심한 구석이 있는 저에게도, 흐릿한 기억 속의 선생님은 언제나 관심을 주셨어요. 식물은 눈이 없어도 햇빛을 느끼고 그쪽으로 향하게 되잖아요. 열한 살의 저도 선생님의 관심을 눈으로 볼 수는 없었지만 분명히 그 따사로움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초등학생 때니까 교과목별 강의력보다는 인성교육이 주라서 그런 것 아니냐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중고등학생 때 '잘 가르치던' 선생님 기억나시나요? 저는 잘 기억 안 나요. 그리고 공부 잘하는 친구들은 '제가 잘 나서' 공부 잘 한 줄 압니다. 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이름 대면 사람들이 다 아는 서울의 유수 대학교를 졸업한 저도 '제가 잘 나서' 공부 잘해서 좋은 학교 간 줄 압니다. 물론 공부라는 게 '배울 학'의 영역(선생님이 학생에게 전달하는)도 있지만 '익힐 습'의 영역(학생 본인이 투자해야 하는 노력)도 있기에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요. 하지만 그 뒤에는 분명히 선생님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문법과 독해도 물론 가르치지만 아이들에게 관심을 뿌립니다. 수많은 학원 강사 중 저의 비교우위가 바로 그것이니까요. 저보다 잘 가르치는 강사들은 아주 많겠지만, 저보다 아이들에게 관심이 많은 강사는 별로 없을 것 같아요. 자부할 수 있어요. 그런 관심 귀찮고 싫으니까 관심 끄라고요? 반박합니다. 아이들은 관심이 필요합니다.



매슬로우의 5단계 욕구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욕구는 1단계와 2단계가 충족된 다음엔 3, 4단계를 향합니다. 요즘같이 풍요로운 시대에 대한민국에 사는 학생 중 1단계와 2단계가 충족되지 않는 아이들은 극히 드물어요. 게다가 학원에 다닐 정도면 부모님이 최소한의 경제적 능력이 되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3단계 애정 소속 욕구와 4단계 존중 욕구가 충족되어야 할 차례이죠. 그래서 저는 말을 겁니다. 주말에 무엇을 했는지, 장래희망이 있는지, 머리가 길어서 눈을 찌를 것 같은데 머리를 자르는 주기는 얼마나 되는지, 지우개 모양이 귀여운데 어디서 샀는지, 수업 중에 낙서한 그림을 봐도 꾸짖기보다는 그림을 잘 그리는 재주가 있는데 어디서 배운 적이 있는지...




얼마 전 인터넷에서 본 캡처를 첨부합니다.


내가 열두 살 때, 알바 삼아 몇 년 동안 어떤 여자애를 베이비 시팅 한 적이 있었어.

그 애는 내가 오면 내 손목을 잡아끌어 데리고 가서는 일주일 동안 자기가 그렸던 그림들을 보여줬어.

그러고는 "그 목소리 내는 거 해줘요!"라고 말하곤 했어.

그럼 나는 올림픽 경기를 중계하는 스포츠 아나운서처럼 감상을 말해줬어.


"이 형태를 좀 보십시오! 색칠의 수준을 좀 보세요! 크레파스를 가지고 이렇게 완벽하게 칠하는 건 정말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건데요! 그리고 이건 또 뭔가요? 이야, 이거야말로 진짜 아무나 할 수 없는 건데요... 캔버스 전체를 핑크빛으로 칠했군요... 저는 이런 건 1932년 겨울 이후로는 처음 봅니다! 아무리 봐도 너무나 멋집니다"


그럼 여자애는 쓰러질 정도로 막 웃으며 좋아했어. 밤이 되어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면 매번 나한테 물어봤지. "아까 그림 진짜로 좋았어요?" 그럼 나는 그림에서 눈에 띄었던 점을 몇 가지 짚어서 얘기하면서 좋았다고 말하고 여자애가 잠드는 걸 봐줬어.


그 여자애는 이제 유명한 예술 학교 3군데에 합격했어. 나한테 편지를 썼더라고. 자기가 어렸을 적 사진도 같이 보냈어. 캔버스 전체를 핑크빛으로 칠한 그림을 들고 있는 사진이야.


편지에 이렇게 썼더라고.


"고마워요. 내 안의 가능성을 알아봐 준 사람에게"



잘 가르치는 강사가 되고 싶지 않아요.

핑크색 캔버스를 들고 찍은 사진이 첨부된 편지를 받는 강사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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