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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로 Dec 24. 2022

33세 영어강사와 22학번 대학생의 은밀한 이중생활

2022년 12월 10일 토요일, 무엇을 하셨나요? 제 친구 세희는 일 년 내내 달렸던 회사 일을 잠시 멈추고 일본으로 해외여행을 갔고요. 미국에서 회사 다니는 상민이는 골프 치러 갔고, 이직 준비하는 용희는 지금 대학교 성적 증명서 뽑으면 F가 포함돼서 나오는지 단톡방에 물어보며 바쁜 하루를 보냈습니다. 저는 '시험'을 보고 왔고요.  





현재 영어 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지만 제 학부 전공은 경영학입니다. 중학생, 고등학생들에게 내신, 수능 모의고사 수업을 하는 데 큰 무리는 없어요. 그런데 가끔 궁금한 점이 나타납니다.



pave, gave, cave는 [페이브], [게이브], [케이브]라고 읽는데 왜 have는 [헤이브]가 아니라 [해브]라고 발음할까? thousands of people 대신에 thousands people이라고 쓸 수는 없는 걸까? 내신과 수능 따위를 준비하는 데에는 별 쓸모도 없고, 학생들이 물어보는 질문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궁금하잖아요!



초등학생인지 교수님인지 알 수 없는 모든 유저가 답해줄 수 있는 지식in이나, 네이티브 사람들에게 물어볼 수 있는 hinative.com을 이용할 수는 있지만 뭔가 아쉬움이 있달까요. 요즘 유행인 드라마에서처럼 재벌 할아버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영어에서만큼은 제게도 '비빌 언덕'이 필요했습니다.



지식in이나 hinative.com 에는 질문을 해도 누군가 반드시 답변해 줄 것을 확신할 수 없습니다. 마치 취준생이 이력서를 접수하고 올 지 안 올지 모르는 '축하합니다! 1차 서류전형을 통과하셨습니다. 2차 면접전형은 아래 일정과 같이 진행됩니다.'라고 쓰여있는 메일을 조마조마하게 기다려야 하는 것처럼요. 물론 답변자의 전문성도 의심되고요.



저도 우리 학원 우리 반 아이들의 선생님이지만, 제 선생님이 필요합니다. 모를 때 믿고 의지 할 수 있고, 여쭤 볼 수 있는 선생님이요. 그래서 2022년 6월 20일,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영어영문학과 3학년 편입 신청서를 작성하고 8월 1일에 합격을 합니다. 그렇게 33세 영어강사 본캐와 22학번 대학생 부캐의 은밀한(?!) 이중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방송통신대학교, 줄임말은 공식적으로 방송대, 보통 사람들은 방통대로 많이 부릅니다. 등록 전, '입학은 쉽지만 졸업은 아니란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한 학기 동안 수업을 들으면서 중간 과제와 출석수업, 기말고사 준비 기간에 바짝 바쁘게 살았습니다. 학부 때 느낌도 나고 좋았어요. 무엇보다 '어제보다 더 나은 나'가 된다는 우쭐한 마음이 가장 만족스러웠습니다. 한 학기 당 약 30여만 원의 저렴한 학비로 이다지도 훌륭한 자기 효능감을 살 수 있다니. 배우는 것은 기본이요, 아주 남는 장사입니다.



기출문제로 공부하며 감을 익혔습니다



기말고사까지 무사히 치르고, 점수도 나왔습니다. 아직 최종 합산이 되지는 않았지만, 기말고사 점수를 환산해 더해보았을 때 [A+] 5과목, [A0] 1과목으로 예상됩니다. 어때요, 저 잘했죠? 이제 장학금 여부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주 운이 좋다면 전액 장학금, 아마도 반액 장학금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상위 5%까지가 전액, 15%가 반액이거든요.



늦은 아침에 일어나 방송대 온라인 수업을 듣고 필기하며 학생으로 살다가, 오후 4시가 되면 중, 고등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변신합니다. 2022년 하반기는 그렇게 은밀한 이중생활을 하며 살았습니다. 공부하는 선생님. 아이들한테도 뭔가 더 당당해집니다. 게다가 장학금까지 받는 선생님이다? 이건 게임 끝입니다. 보름 뒤 장학금 발표를 손꼽아 기다리며, 이제 2023년 1학기의 이중생활 과목을 고르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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