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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로 Dec 31. 2022

가짜 대학생 찾기 테스트

1호선 수원역 10번 출구로 나가서 쭉 직진을 하다 보면 대한대우푸르지오 아파트 단지가 나온다. 단지 입구가 나오기 직전에 위치한 상가 2층에는 아트카페 잉크가 있다.




음료를 1인 당 1잔씩 시키면 여러 가지 그림의 윤곽선이 그려진 엽서들 중 마음에 드는 것을 각자 하나씩 고를 수 있다. 2인 당 1개씩 수채화용 미니 팔레트도 준다. 아무 자리에나 맘에 드는 곳에 가 앉으면, 테이블마다 수채화가 부담스러운 사람들을 위한 색연필 또한 준비되어 있다.


"어떤 그림 고를 거야?"


"저는 강아지 모양이요."


"나는 그럼 병아리."



고양이 모양을 고르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없었다. 나는 시원한 아인슈페너, 가짜 대학생은 따뜻한 라떼를 골랐다. 같이 먹을 디저트로 크로플을 주문하려 했는데 생지가 다 떨어졌다해서 차선책으로 브라우니를 주문했다. 요즘 사람 놀이 하고 싶어서 크로플 꼭 먹고 싶었는데, 좀 '옛날 디저트'인 브라우니를 먹게 되어서 아쉬웠다. 쩝. 아닌가? 크로플도 이제 한 물 갔나?



아무튼 이 가짜 대학생은 내가 몇 년 전 수능 영어를 가르쳤던 학생이다. 지금은 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진짜 대학생이다. 이 '진짜 대학생'을 나는 '가짜 대학생'이라고 부른다. 이유는 대학생답지 않게 살고 있는 가짜이기 때문이다!



아래는 가짜 대학생 테스트이다.

네 가지 기준 중에서 세 가지 이상에 해당하는 학생은 가짜 대학생이다.

본인이 대학생이거나 주변에 대학생이 있다면, 그를 떠올리며 테스트를 확인해 보자.

혹시 나는 진짜인지, 주변에 가짜가 있지는 않은지 잘 찾아보도록!



첫째, 가짜 대학생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장학금을 받는다.


내가 찾은 이 가짜 대학생은 부모님이 하시는 가게의 홀에서 주문, 계산 등의 일을 도우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나도 가게에 많이 방문했었고, 식사도 했었다. 잠시 가게에 대해 소개를 하자면 냉면 집인데 주력 냉면과 더불어 돈까스 맛이 기똥차게 좋아서 그 점에서도 유명하다.


진짜 맛있는 돈까스


마치 왕십리 구 시장 쪽에 '장어구이'집에서 아무도 '장어구이'는 안 먹고 '김치찌개'만 먹는 것과 비슷하다! 다시 주제로 돌아와서 이 대학생은 열심히 알바를 하면서 여태까지 장학금을 놓친 적이 없다. (글을 처음 저장한 날 기준으로 그러하였으나, 일주일 째 글을 다듬고 있는 지금 기준으로 어제 비보가 전해졌다. 학점이 나왔는데, 이번 학기에는 안타깝게 장학금을 놓칠 것 같다는 소식. 가짜 대학생이 진짜가 되고 싶어 조건을 하나둘씩 포기하는 건가!? 그러지 마라!)



둘째, 가짜 대학생은 자기 계발 및 포트폴리오용 블로그를 운영한다.


나는 편견이 있다. 대학생들이 운영하는 블로그에는 크게 여행, 봉사 및 동아리 등 스펙 관련, 일상 맛집, 뷰티 등의 주제가 주를 이룬다는 편견. 가짜 대학생이 블로그를 운영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전에도 한 번 보여준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때 당시에 이 친구가 포스팅 한 내용은 우리가 처음으로 함께 방문한 이케아에서 구경한 것들이었다. 내 얼굴이 공개될까 봐 (사실 상관 없는디!) 독수리 대가리를 합성해 줘서 꽤나 맘에 들었던 포스팅이었다.



이번에 만났을 때, 블로그를 열심히 하고 있다길래 독수리 대가리 블로그인 줄 알고 보여달라 했다. 아뿔싸! 블로그 포스팅의 대표 썸네일은 웬만한 전문 유튜버 뺨치게 디자인이 기깔난다. 한 마디로 짜치지 않다! 내용 구성 역시 IT 업계의 전문가가 정리하는 블로그처럼 정갈하고 프로페셔널하다. 이게 대학생의 퀄리티인가? 아무래도 이 자는 가짜다. 이 블로그를 보고 전공 교수님이 학부 연구생 자격으로 같이 랩실에서 공부해 볼 생각이 없냐고 제안을 해왔다고 한다. 아무래도 가짜 대학생이고, 대학원생 같다.



셋째, 가짜 대학생은 단 한 번의 휴학도 없이 마지막 학년인 4학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나는 휴학 1년, 졸업 유예 6개월을 한 바 있다. 휴학 1년 동안은 아르바이트로 돈 모아서 나 홀로 유럽 여행도 3주나 다녀오고 인턴이나 계약직으로 회사 경험도 했다. 물론 중간중간 '먹고 대학생' 노릇을 하기도 했다. 집에서 굼벵이처럼 이불 뒤집어쓰고 뒹굴거리면 아빠가 자주 '너 먹고 대학생이냐?' 하고 물었다. 먹고 놀기만 하고 공부나 일은 안 하는 대학생이라는 뜻. 이 가짜 대학생은 휴학 한 번 없이 스트레이트로 4학년을 향해 달려가는 KTX급 고속열차다.



넷째, 가짜 대학생은 평소에도 꾸준히 전공 공부를 하며 휴대폰을 자주 사용하지 않는다.


이 네 번째 기준이 이 친구를 가짜 대학생이라고 판단하게 된 가장 확실한 증거이다. 나는 대학생 때 공부를 했다. 당연하지. 대학생이니까. 그렇지만 그건 시험기간이나, 쪽지시험을 볼 때만 그랬지. 과제를 하는 것도 사실 공부라기보다는 '리포트 쓰기' 정도였다. 근데 이 자는 정말 매일 전공 공부를 한다. 심지어 카톡을 보내도 한 8시간 후에 확인을 하고 답장을 한다. 별 쓰잘데기 없는 대화들도 많은 오픈 카톡방의 안 읽은 메시지 개수가 거의 항상 0에 수렴하는 나는 반성을 한다. 어떻게 휴대폰을 안 하고 공부를 하지?



위 네 가지 기준에 의거하여 이 친구는 나에게 가짜 대학생 판정을 받았다. '진짜 직장인'인 나는 오늘도 '가짜 대학생'을 보고 배울 점을 찾아간다. 우선 당장 오늘 밤 자기 전 휴대폰을 하지 않는 것부터 배워야겠다. 굿밤!




가짜 대학생과 내가 그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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