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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로 Jan 17. 2023

선생님, 모레머니가 뭐예요?

"선생님, 모레머니가 뭐예요?"


"모레머니? 어느 문제에 나와 있어?"


"여기 5번에요."


아뿔싸.

우리 중1 학생이 물어본 단어는.

바로.

more였습니다.



생각해보니 화장품회사 AMORE PACIFIC은 아모레퍼시픽이라 읽네요!







우리 학원에서 제가 맡고 있는 중1(예비 중2) 반은 아직 파닉스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쉬운 단어들도 발음을 잘하지 못해요.


파닉스가 커리큘럼에 있지 않아서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발음을 가르쳐 줄 수는 없지만 가능할 때마다 단어를 읽는 방법들을 알려주려고 합니다.



87년생 토끼띠 우리 언니는 중1 때 “Paul is a middle school student.”를 읽을 때 [파울 이즈 어 미들스쿨 스튜던트]라고 했대요.



사람 이름 [폴]이라고 읽어야 하는데 언니는 그때 영어 학원을 안 다녔거든요.

그냥 집에서 엄마랑 영어 책 펴놓고 a는 아 라고 읽고 u는 우라고 읽는 것만 알았으니까 배운 대로 [파울]이라고 읽은 거예요.



어학원에 다녀서 이미 선행학습을 했던 친구들이 그걸 듣고는 키득키득 비웃었다고 해요. 어린 나이에 너무 부끄러웠던 언니는 집에 오자마자 엄마에게 어학원에 보내달라고 했대요.



저는 더 심해요. 대학교 3학년 때 영어 전용 강의를 들었어요.

교수님도 영어로 강의하시고 모든 교습 자료도 영어, 학생들이 케이스 스터디를 발표할 때에도 영어로 발표해야 했지요.



하루는 교수님이 빔프로젝트로 띄워 둔 교습 자료를 돌아가면서 한 문단씩 읽게 시키셨어요. 제 차례가 왔습니다.



“Global marketing trend archive.”


짧은 문구였어요.


발음도 최대한 굴려가면서 자신 있게 읽었습니다.



[글로벌 마케팅 트렌드 알취~~~브]



더 부끄러운 것이 뭔 줄 아세요? 교수님도 그 어떤 지적도 하지 않으셨고 그 어떤 학생도 키득거리지 않았습니다. 즉, 저는 수업이 끝날 때까지 틀린 줄도 몰랐어요.


토종 100% 신토불이 국내파 치고는 발음도 아주 멋지게 굴려서 잘 읽었다고 오히려 기분이 업 된 채로 수업을 마쳤어요. 



가방을 싸고 있는데 그때 당시 여러 번 수업을 같이 들어서 친해졌던 미국인 학생 Scott이라는 친구가 와서 말해줬어요.


“Hey~ 아까 너가 읽은 archive, 알카이브라고 읽는 거야.”



*archive: 실 발음은 알카이브와 가깝고,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아카이브라고 명기한다. 기록 보관소라는 뜻.


영어에 관심이 많아서 Scott에게 영어 공부 방법을 물어봤던 적이 있었거든요. Scott은 제가 영어를 좋아하고 잘하고 싶어 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저를 위해 기꺼이 틀린 것을 지적해 줬어요.



‘아! 이럴 수가. 틀릴 수는 있는데, 잘난 척하면서 발음하지는 말걸...
괜히 r 발음까지 굴려서 더 X 팔리게...’



 그날 이후로 저는 아카이브를 정확하게 발음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영어 철자 개혁을 위해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합니다.



‘ghoti’를 발음해 보세요. 뭐라고 발음하셨나요? [고우티]라고 하셨나요?

저는 ‘ghoti’를 [피쉬]라고 발음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1. enough에서 gh는 [ㅍ]
2. women에서 o는 [이]
3. nation에서 ti는 [쉬]

합치면 피쉬가 되는 거죠.



이처럼 영어는 우리의 한글과 비교했을 때 말소리를 표기하는 데 적절하지 않은 부분이 많습니다.

알파벳 하나에 여러 가지 소리 값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파울을 선언하던 우리 언니, 당당하게 알취~~~브를 발음했던 나.



영어를 조금이라도 배워본 적이 있다면 여러분 모두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진부한 말이지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잖아요.



언니는 파울 덕분에 영어 학원에 등록해서 공부에 매진했고요. 저는 아카이브의 발음과 뜻을 이제 그 누구에게도 정확하게 설명해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중1반 친구들은 모레머니 말고도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냅니다.

soup를 뭔가 미국에 신 맛 나는 소스 브랜드 이름 같은 [싸우프]라고 읽고요.

dessert는 모차르트 짝퉁도 아니고 [데저르트]라고 읽어요.



그래도 예쁜 게 뭔 지 아세요? 부끄러워서 움츠러들기보다는 해맑게 웃으면서 “아~~~” 하고 새로운 지식을 열심히 빨아들입니다. 한 번 알려주면 다음엔 [싸우프] 대신 좀 더 스프에 가까운 [쏘프]로 읽고요. [데저르트] 대신 디저트와 좀 더 가까운 [데설트]라고 읽어요.





월드컵 16강 진출 후 국가대표 선수들이 태극기에 쓴 문구로 오늘의 글을 줄여 봅니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중요한 것은 움츠러들지 않는 태도!!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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