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 남편과 산다는 건

열아홉 번째 이야기

by 달빛여우


시계가 새벽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야근한다던 남편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방 안에는 초침 소리만 또렷하게 울렸다.

눈은 감기는데 마음이 불안해서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창문 틈으로 스며든 밤공기가 이불속까지 파고들었다.


이 시간, 이 공간에 나 혼자 깨어 있다는 사실이

유난히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때였다.


창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아주 천천히 창가로 다가가 창을 열었다.


우리 집은 빌라 2층이었다.

아래를 내려다보자 남편이 서 있었다.


한 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있었고, 얼굴에는 오랜만에 보는 밝은 웃음이 걸려 있었다.


술기운이 묻어난 웃음일 수도 있었고, 누군가와 나눈 대화의 온기가 남아 있는 표정일 수도 있었다.


“잘 들어갔어요?”


그가 그렇게 말하는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곧 그의 시선이 위로 올라왔고,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몇 초 사이에 공기가 갑자기 식어버린 것 같았다.


웃음은 그대로였지만, 눈빛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나는 그 흔들림을 놓치지 못했다.

그 순간, 이유 없는 확신이 들었다.

상대는 여자일 거라고.


몸은 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무언가 말해야 할 것 같은데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심장은 정반대였다.

미친 듯이 뛰었다.


너무 크게 뛰어서 이 소리가 혹시 그에게까지 들리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잠시 후, 현관문이 열렸다.


남편이 집 안으로 들어왔고, 희미한 술 냄새가 공기 사이로 번졌다.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그를 바라봤다.


“누구랑 통화했어?”


생각보다 차분한 목소리가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회사 사람.”


짧고 건조한 대답이었다.


“… 여자야?”

“아니, 선배. 술을 많이 마셔서 확인차 전화한 거야.”


그의 말은 너무 간단해서, 더 묻기 어려웠다.

마치 더 이상의 질문을 허락하지 않는 문장 같았다.


하지만, 그 말들은 내 마음속에서 전혀 다른 소리로 울렸다.


거짓말.


어디선가 누군가가 소리 없이 외치는 것처럼,

그 단어가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따질 수가 없었다.


진실을 캐묻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 말이 거짓이라 해도 차라리 믿고 싶었다.

아니, 믿는 척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진실을 확인하는 순간, 지금 겨우 유지하고 있는 이 균형이 완전히 무너져버릴 것 같아서.


그래서 나는 더 묻지 않았다.


의심을 삼킨 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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