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 남편과 산다는 건

스무 번째 이야기

by 달빛여우



다음 날이었다.


의식하려 하지 않았는데도, 어느새 내 손은 남편의 휴대폰을 쥐고 있었다.


잠금 화면을 넘기는 순간 심장이 먼저 반응했다.


통화 목록 맨 위, 낯선 여자 이름 하나가 눈에 박혔다. 너무 또렷해서, 모른 척 지나칠 수가 없었다.


“…이 사람, 누구야?”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그는 화면을 흘끗 보더니 짧게 말했다.


“회사 사람이야.”


그 말은 너무 쉽게 나왔다.

설명도, 덧붙임도 없이.

마치 그게 전부라는 듯.


며칠 뒤, 나는 다시 휴대폰을 보게 됐다.

그 이름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통화 기록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처럼.


다시 물었을 때, 그는 얼굴을 찌푸렸다.

목소리에는 노골적인 짜증이 묻어났다.


“왜 그렇게 집요해?”


야근이라고 했던 날은, 며칠 뒤엔 회식자리로 바뀌어 있었다.

내가 말을 꺼내자 그는 태연하게 정정했다.


“그건 다른 날 얘기한 거지.”


그의 말은 계속 달라졌다.

날짜도, 이유도, 상황도.


바뀌는 건 말뿐이었지만, 그때마다 내 마음 한쪽이 조금씩 닳아갔다.


“아 진짜, 사람 지치게 하네.”


그 말에 나는 결국 입을 다물었다.

더 말해봤자 내가 예민한 사람, 피곤하게 구는 사람이 될 것 같았다.


진실을 묻는 질문이 어느새 잘못이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불을 끈 방 안에서 어두운 천장을 바라본 채 누워 있었다.


그러자 하루 동안 애써 밀어두었던 생각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들었다.


말하지 못한 말들, 아직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게 내가 꿈꾸던 결혼일까.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점점 멀어지는 느낌을 안고 살아가는 게 결혼이었을까.


연애 시절의 우리가 떠올랐다.


우리는 분명 뜨겁게 사랑했다.

그의 말 한마디, 따뜻한 눈빛 하나에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곤 했다.


그때의 나는 그의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미래를 의심하지 않았고, 마음을 지킬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남편은 내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고, 내 감정에는 좀처럼 닿지 않았다.


식탁 위에서 오가는 대화는 늘 중간에서 끊겼고, 그의 시선은 내 얼굴에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우리는 함께 앉아 있었지만, 같은 자리에 있지는 않았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정말 사랑이었을까.


그는 정말 나를 사랑한 적이 있었을까.


눈을 감아도 생각은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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