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한 번째 이야기
며칠 전부터 몸이 이상했다.
감기에 걸린 것처럼 온몸에 힘이 빠졌고, 밥 냄새만 스쳐도 속이 울렁거렸다.
그냥 피곤해서 그런 거라 넘겼다.
요즘은 마음도 몸도 모두 지쳐 있었으니까.
하루쯤 더 버티면 괜찮아질 거라,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며 지냈다.
그러다 무심코 달력을 보던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지나간 날짜들 사이에서 생리가 멈춰 있었다.
이미 며칠이나 늦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그제야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설마…’
애써 외면해 왔던 생각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약국에서 테스트기를 사 왔다.
욕실 문을 닫고 변기 위에 앉아 한숨을 고르며 기다렸다.
짧은 시간이었는데도 이상하게 길게 느껴졌다.
그리고 잠시 후, 작은 창 안에 두 줄이 나타났다.
흐릿하지도, 애매하지도 않은, 선명한 두 줄이었다.
나는 그대로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놀라움과 두려움이 한꺼번에 밀려와 가슴을 가득 채웠다.
‘아기라니…’
말로 옮기자마자 사라질 것처럼 실감이 나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배 위에 손을 얹었다.
아직은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없는 기척이라도 붙잡고 싶은 마음으로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주위는 고요했지만, 내 마음은 수없이 갈라진 생각들로 흔들리고 있었다.
내 삶에 찾아온 첫 생명.
내가 일찍 결혼하고 싶은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 한편이 무거웠다.
겉으로 보기엔 큰 문제가 없어 보여도, 지금 우리 부부에게 아기가 찾아온 것이 정말 괜찮은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마냥 기뻐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못내 걸려 죄책감이 밀려왔다.
혹시라도 이 마음을 아이가 느끼기라도 할까 봐, 괜히 더 조심스러워졌다.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아기 가진 것 같아.”
잠시 숨을 고르던 엄마는 곧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잘 됐다. 정말 잘 됐다. 축하해, 우리 딸.”
그 한마디에 단단하게 얼어붙어 있던 마음이 스르르 풀어졌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라며 등을 가만히 쓸어주는 것 같았다.
그제야 참아왔던 감정이 터져 나와 눈물이 고였다.
기쁨인지, 안도인지, 혹은 그 모든 것이 뒤섞인 눈물이었다.
내 아기.
아니, 우리의 첫아기.
이렇게 우리에게 찾아와 준 것이 새삼 고맙게 느껴졌다.
아직은 서툴고, 두려움도 많고, 확신보다는 고민이 앞서지만 그래도 분명한 건 하나였다.
이 작은 생명이 지금 이 순간 내 안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그 하나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소중하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