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 남편과 산다는 건

스물두 번째 이야기

by 달빛여우



그날 저녁, 퇴근한 남편과 식탁에 마주 앉았다.


식탁 위에는 늘 먹던 그대로의 저녁상이 차려져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전혀 다른 자리에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국에서 오르는 김도, 반찬의 색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숟가락을 들었다가 내려놓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말은 이미 목까지 차올라 있었는데, 쉽게 나오질 않았다.


그가 어떤 얼굴을 할지, 어떤 말을 할지.

이 말을 꺼내는 순간이 자꾸만 상상됐다.


혹시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웃으면서 안아주지는 않을까.


“정말?” 하고는 괜히 나보다 더 들떠하지는 않을까.


말도 안 되게 그런 기대를 조금은 품고 있었다.


결국 숨을 한 번 깊게 삼키고, 최대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우리… 아기 생긴 것 같아.”


말이 공기 중에 떨어진 순간, 식탁 위의 분위기가 미묘하게 바뀌는 게 느껴졌다.


남편은 숟가락을 멈춘 채 나를 가만히 보았다.

놀람과 당황이 섞인 표정이었다.


“벌써?”


그리고는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덧붙였다.


“나는 좀 더 신혼을 즐기고 싶었는데.”


그 말이 끝나자, 내 안에서 차오르던 기쁨이 한순간에 힘없이 꺼져버렸다.


이제 막 피어나려던 마음이 손도 써보지 못한 채 사라진 느낌이었다.


가슴 한가운데가 서늘해지면서, 조금 전까지 분명히 있던 온기가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실망한 기색을 들키고 싶지 않아 젓가락을 괜히 더 꽉 쥐었지만, 마음은 이미 가라앉고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배 위에 손이 갔다.


아직은 너무 작아서 눈에 보이지도 않고, 느껴지지도 않는 아이.


그런데도 그의 말이 이 아이에게 닿았을까 봐 마음이 아팠다.


혹시 아빠에게 환영받지 못했다는 기분을 먼저 알아버리지는 않을지, 그런 쓸데없는 걱정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괜히 더 미안해졌고, 나 혼자서라도 꼭 감싸 안아야 할 것 같았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틀어진 건 상황이 아니라, 마음의 방향인 것 같았다.


우리 사이 어딘가에 눈에 보이지 않는 금이 이미 가 있는 것 같았다.


가늘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금.


아무리 애써도 예전처럼 이어지지 않을 것 같은 불안한 감각이었다.


나는 더 이상 그 자리에 앉아 밥을 먹을 수 없었다.


밥맛이 없어진 게 아니라, 마음이 차게 식어버렸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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