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 남편과 산다는 건

스물세 번째 이야기

by 달빛여우



임신 소식을 전한 그날 이후로,

남편은 더 자주, 더 늦게 들어왔다.


나는 그 이야기를 함께 나눈 뒤라서, 우리 사이가 조금은 달라질 줄 알았다.


아주 크게가 아니라도 좋았다.


퇴근길에 꽃 한 송이를 사 오거나,

“오늘은 어땠어?” 하고 먼저 물어봐 주거나,

컨디션은 괜찮은지 입덧은 없는지 한마디 건네주는 것 정도면 충분했다.


그런 사소한 관심 하나만으로도 나는 마음이 놓였을 것이다.


하지만


현관문이 열리는 시간은 늘 새벽이었다.

늦는 이유는 언제나 같았다.

회사에 일이 많다는 말.

그 말은 점점 설명이 아니라 벽처럼 느껴졌다.


그의 하루는 나를 스치지도 않은 채,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곳에서 끝나고 있었다.


나는 혼자 저녁을 먹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2인분의 음식을 만들었지만, 대부분 그대로 남았다.


그릇을 치울 때마다 마음도 함께 접히는 것 같았다.


괜히 식탁을 오래 닦았다.

빈자리가 더 또렷해질까 봐, 그 공백을 조금이라도 흐리게 만들고 싶어서.


처음에는 걱정이 앞섰다.

회사에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닐까, 많이 힘든 건 아닐까.

이해하려 애썼다.


그의 입장이 되어보려 했고, 혼자서 이유를 만들어 마음을 달랬다.


그런데 그런 날들이 하나둘 쌓이자, 걱정은 서서히 체념으로 변해갔다.


기대하지 않으면 덜 아플 거라고,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하는 법을 배워갔다.


그럼에도 끝내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는 것이 하나 있었다.


뱃속의 아이에게 아빠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하루 종일 기다려도, 그 목소리는 집 안에 닿지 않았다.


집은 너무 조용했고, 그 조용함은 밤이 깊어질수록 더 버겁게 가슴을 눌렀다.


나는 가만히 배를 감싸 안았다.

아직 아무 변화도 느껴지지 않는 배를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감싸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가야, 엄마는 너를 기다렸어. 엄마는 네가 찾아와 줘서 정말 기뻐.”


아직 들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내 마음이 이 작고 보이지 않는 생명에게 닿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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