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 남편과 산다는 건

서른여덟 번째 이야기

by 달빛여우



그날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아이가 두 돌이 되었을 즈음, 나는 다시 일을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결심은 어느 날 갑자기 내려진 것이 아니었다.


남편이 술자리에서 돌아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비슷한 말들이 흘러나왔다.


“누구 와이프는 연봉이 얼마래.”

“누구 와이프는 회사에서 승진했다더라.”


그는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나가서 돈 벌어.”라고.


그러나 그 말들에는 분명한 방향이 있었다.


비교와 평가가 섞인 문장들은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내 마음을 짓눌렀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다섯 살 무렵, 엄마는 내 손을 잡고 유치원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한 달쯤 지나 조심스럽게 물었다.


“종일반에 있어도 괜찮겠니? 엄마는 아빠 일을 도와야 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엄마를 돕는 일이라고 믿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과 반찬을 나눠 먹은 것이 화근이었는지 간염에 걸렸다.


병원에 오래 입원해야 했고, 간병에 지친 엄마는 내 옆에서 링거를 맞았다.


창백한 얼굴로 힘없이 누워 있던 엄마의 모습은

어린 나에게 너무도 선명한 슬픔으로 남았다.


이듬해, 바라던 동생이 태어났다.

정말 기뻤다. 동생을 갖는 것은 내 오랜 소원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엄마가 일을 해야 했기에, 일주일 뒤 동생은 다른 지역에 있는 고모 집으로 보내졌다.


그날 얼마나 서럽게 울었는지, 그 기억은 지금도 내 안에 깊이 새겨져 있다.


아이는 내 손으로 키워야 한다는 생각.

그 믿음은 자라면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결혼 전, 나는 그에게 몇 번이고 물었다.


“결혼 후 맞벌이를 원해?”


아무리 서로를 사랑해도, 그 선택이 다르다면

나는 그와 미래를 함께 그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 질문은 설득이 아니라, 우리 둘 모두를 위한 확인이었다.


그때마다 그는 눈을 맞추며 말했다.


“네가 정말 하고 싶어서라면 말리지 않을게.

하지만 돈 때문이라면… 나는 원하지 않아.”


그 말에 나는 안도했다.


이 사람이라면, 함께 가정을 꾸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믿었다.


작은 투룸에서 시작하는 것도, 그의 월급이 적은 것도 상관없었다.


그것은 내가 선택한 삶이었고, 그 무게는 내가 감당할 몫이었다.


중요한 것은 부족함이 아니라, 함께 그려가는 미래였다.


계산보다 마음이 앞서는 결혼, 그것은 내가 오래도록 꿈꿔온 모습이었다.


그러니 달라진 것은, 내가 아니었다.


나는 그가 벌어온 돈으로 살림을 꾸렸고,

주어진 범위 안에서 균형을 맞추며 살아왔다.


그러나 남편은 내가 지켜온 시간을 인정하지 않았다.


아이를 품에 안고 밤을 지새운 날들,

혼자 감당해야 했던 육아의 무게.


그 모든 순간을, 그는 중요하지 않은 일로 여기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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