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 남편과 산다는 건

마흔네 번째 이야기

by 달빛여우



임신 석 달 무렵, 시이모부님의 부고를 들었다.


나는 장례식에만 잠시 다녀올 생각이었지만,

남편의 고집은 끝내 나를 장지까지 데려갔다.


긴 하루를 겨우 버텨내고 돌아오는 길,

몸이 이상하리만치 무거웠다.


허리와 배가 짓눌리는 듯 아팠고,

밀폐된 차 안의 공기조차 숨을 죄어 왔다.


설명할 수 없는 불안이 서서히 온몸으로 번졌다.


‘설마…’ 하는 마음에 집에 도착하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갔다.


또렷한 하혈의 흔적에 숨이 턱 막혔지만,

정신을 붙잡고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


아직 아이가 완전히 자리를 잡지 못한 상태라,

조금만 무리해도 유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절대적인 안정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말이, 스쳐 지나가는 소음처럼 멀어져 갔다.


간신히 붙들고 있던 희망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남편은 여전히 내 상황을 돌아보지 않았다.

내가 얼마나 둘째를 간절히 바라왔는지, 알고 있을 텐데도.


그날 이후, 하루하루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조금만 피가 비쳐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고,

밤마다 아이가 내 안에서 살아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병원에서는 최대한 누워 있으라고 했지만,

현실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첫째는 다섯 살이었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나이였고,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는 길이면 늘 놀이터에 들러 몇 시간이고 뛰어놀았다.

그 뒤를 따라가는 내 몸은 이미 한계에 다다라 있었다.


다시 하혈이 시작될 때면 눈앞이 캄캄해졌다.

어떻게 버텨야 할지,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린이집 선생님이 내 사정을 듣고는 아이의 등하교를 집 앞까지 맡아주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막혀 있던 숨이 한꺼번에 트이는 듯했다.


누군가 내 상황을 이해하고 손을 내밀어 준다는 게 얼마나 고맙고 큰 위로가 되던지.


선생님의 손을 꼭 잡고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를 보며 나는 오랜만에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 모든 시간 동안, 내 곁에 남편은 없었다.


마치 남처럼, 아니 남보다도 더 멀리 있는 사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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