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 남편과 산다는 건

마흔다섯 번째 이야기

by 달빛여우




어느 휴일 오후, 집 안은 고요했다.


아이는 방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고,

창밖으로는 느릿한 햇살이 스며들고 있었다.


그 고요를 깨듯, 남편의 휴대폰이 울렸다.


“전화 왔어.”


아이가 깰까 봐 나는 조금 서둘러 말했고,

남편은 잠시 화면을 확인하더니 휴대폰을 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방 안으로 들어갔다.


철컥.

문이 닫히는 소리가 이상하게 크게 들렸다.


잠시 후,

닫힌 문 너머로 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응, 무슨 일 있어?”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


연애하던 시절, 밤늦게까지 통화하며 듣곤 했던 바로 그 목소리였다.


말끝에는 웃음이 묻어 있었고,

숨을 고를 때마다 다정함이 새어 나왔다.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이미 문 앞에 서 있다는 걸.

발소리조차 의식하지 못한 채, 몸이 먼저 움직였다는 걸.


문 너머에서는 웃음을 눌러 삼키는 듯한 숨소리와 함께 조용한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랬구나. 힘들었겠네.”


그 한마디가 유독 선명하게 꽂혔다.

그 안의 온기가 낯설어서, 가슴이 서늘해졌다.


언제부터였을까.

나에게는 그렇게 말해주지 않게 된 게.


이미 우리 사이에서는 오래전에 말라버린 감정이

저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숨 쉬고 있는 것 같았다.


통화는 생각보다 길어졌다.

마치 이 집에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은 사람처럼.


짧은 웃음,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 부드럽게 이어지는 말들.


나는 듣고 싶지 않으면서도, 한마디도 놓치지 못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문이 열렸다.


남편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로 나왔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표정이었다.


나는 급하게 얼굴을 정리했다.

괜찮은 척,

아무것도 모르는 척.


“… 누구랑 통화했어?”


내 목소리는 생각보다 차분했다.


“회사 사람.”


짧고 담담한 대답.

더 덧붙일 것도, 설명할 필요도 없다는 듯한 말투에 차가운 감정이 가슴 안쪽으로 스며들었다.


방금 전까지 문 너머에서 흘러나오던 그의 따뜻한 목소리가 여전히 귓가에 남아 있었다.


그 목소리를 들었을 때의 감정이, 마음 깊은 곳에서 계속 울렸다.


남편에게 마음을 나누는 상대가 있다고.

하지만 그 사람은 내가 아니라고.


그 깨달음은 아무 말도 없이,

오히려 말보다 분명하게

내 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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