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 남편과 산다는 건

마흔여섯 번째 이야기

by 달빛여우



며칠 후, 남편은 아무 말 없이 외박을 했다.


밤새 단 한 통의 연락도 없었고,

내가 수없이 걸어댄 전화는 끝내 받지 않았다.


나는 이제 그에게 남아 있는 감정 따위는 없다고,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하고 싶었다.


그러나 심장은 잔인할 만큼 솔직했다.

불안과 공포가 뒤엉켜 가슴은 미친 듯이 뛰었고,

휴대폰을 움켜쥔 손바닥에는 식은땀이 흥건히 배어들었다.


눈을 감아도 잠은 오지 않았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동안, 머릿속에서는 수천 번이나 그의 행방을 되물었다.


그리고 새벽 여섯 시.

정적을 찢듯 현관문이 열리는 순간,

그동안 억눌러 두었던 감정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어디 있었어?”


갈라진 목소리 끝에 뜨거운 눈물이 금세 눈가를 적셨다.


“회사에.”


남편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

그 태연함이 분노를 더 크게 자극했다.


“거짓말하지 마. 그럼 내 전화는 왜 안 받았어?”


거짓을 거리낌 없이 내뱉는 그의 모습에 나는 본능적으로 거칠게 반응했다.


“전화했어? 몰랐어.”


그는 귀찮다는 듯 말을 던지며 슬리퍼를 질질 끌고 욕실로 향했다.


그 순간, 무언가에 홀린 듯 나는 그에게 달려들었다.


“왜 말을 하다 말아? 어디 갔었냐고 물었잖아!”

“아, 왜 이래? 미쳤어?”


거친 손에 밀려, 나는 그대로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뱃속에는 곧 세상에 나올 아이가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아이를 품은 여자를 밀쳤다.


방금 일어난 일임에도 믿기지 않았다.

그 아이는 남의 아이가 아니었다.

나 역시 그에게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내가 아이를 품고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그 모멸감에 심장은 터질 듯 뛰었고, 온몸은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끝내 참아왔던 눈물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원망과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와중에도

혹시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았을지,

그 두려움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때, 욕실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마치

내 고통 따위는 그에게 아무 의미도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듯,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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