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 남편과 산다는 건

마흔일곱 번째 이야기

by 달빛여우



아침이면 아이를 깨우고, 밥을 차려주고, 어린이집 가방을 챙겼다.


아이를 위해 잠시 붙인 웃는 얼굴로 배웅을 하고 나면,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일도 없는 평범한 하루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혼자 남은 거실에 앉아 있으면, 텅 빈 공간이 서서히 나를 잠식해 오는 것 같았다.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은 평온해 보였지만, 그 빛마저 나를 비껴간 듯 몸 안에는 설명할 수 없는 한기가 느껴졌다.


머릿속에서는 같은 질문만 되풀이되었다.


나는 왜 아직 여기 있는 걸까.

왜 떠나지 못하는 걸까.


그 질문의 끝에는 늘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남편을 좋아했다.

내가 열 달을 뱃속에 품고, 젖을 물리고, 기저귀를 갈며 정성껏 키운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아빠를 좋아했다.


평일에는 남편이 너무 늦어 얼굴조차 보기 힘들었고,

주말에는 늘 잠들어 있어 제대로 놀아주지도 못했다.


그런데도 어쩌다 남편이 일찍 퇴근해 집에 들어오는 날이면,

아이는 마치 슈퍼스타를 만난 것처럼 환호하며 달려가 안겼다.


작은 손으로 남편의 팔을 꼭 붙잡고, 얼굴에는 눈부신 미소가 번졌다.


그 모습을 마주할 때면,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무 감정도 꺼내 보일 수 없었다.


마음속에서는 갈등이 끓어올랐지만, 그저 묵묵히 뒤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들 했다.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에 비할 수 없다고도 했다.


오래전부터 정답처럼 여겨져 온 말이었지만, 우리 집에서는 어딘가 어긋나 있었다.


아빠를 바라보는 아이의 눈빛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붙잡혔다.


서운함도, 질투도 아닌, 이름 붙일 수 없는 무력감이었다.


그 아이에게서 아빠를 떼어놓는 상상만으로도,

마치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짓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이의 웃음을 빼앗는 사람이 내가 되는 것 같았고, 그 순간 나는 가해자가 되는 듯했다.


그리고 사실,

나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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