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여덟 번째 이야기
그랬다.
나는 갈 곳이 없었다.
엄마는 결혼한 오빠와 함께 살고 있었다.
한때 우리 가족이 살던 그 집은 이제
엄마와 오빠 부부, 그리고 조카들이 살아가는
보금자리가 되었다.
아빠의 빈자리에 공허함을 느끼던 엄마는
그 집 안에서 다시 평안을 찾은 듯 보였다.
하지만 그 평안 속에는
아이를 데리고 돌아갈 내 자리는 없었다.
친정에서의 나는
가족 행사에나 얼굴을 비추는,
손님에 가까운 존재였다.
그 사실은 나를 끝없이 작게 만들었다.
세상의 어디에도
내가 설 자리는 없는 것 같았다.
내가 겨우 숨 붙이고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은
남편과 아이 사이, 작은 틈뿐이라는 사실이
나를 숨 막히게 했다.
남편은 부부싸움이라도 한 날이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이혼하면 애는 네가 키워. 네가 엄마잖아.”
아이를 떼어놓는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 말이 유독 깊이 파고든 이유는
다른 데에 있었다.
그의 말에는
아이에 대한 애정도,
헤어짐에 대한 아쉬움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내 귀에는
우리 아이가 그에게는
그만큼의 무게를 가진 존재가 아닌 것처럼 들려서였다.
어쩌면 그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아이 둘을 데리고 갈 곳도,
이 삶을 홀로 감당해 낼 힘도 없다는 사실을.
그래서 그 말은
벗어날 수 있다면,
어디 한 번 나가보라며 등을 떠미는
조용한 협박 같기도 했다.
아빠를 좋아하는 첫째와,
내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또 하나의 생명.
그리고 도망칠 곳 하나 없는 현실.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몰려와
나를 짓눌렀다.
마치 숨 쉴 틈조차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