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아홉 번째 이야기
나는 이미 자신감을 거의 잃은 상태였다.
창백한 얼굴은 빛을 잃은 듯 흐릿했고,
눈가에는 피로가 내려앉아 있었다.
어깨는 무겁게 처져 있었는데,
그 무게는 단순한 피곤함이 아니라
말하지 못한 사연들이 켜켜이 쌓인 결과였다.
어느 순간부터 남편은
스스럼없이 내 외모를 깎아내리기 시작했다.
“너 요즘 왜 이렇게 배가 나왔어?”
“야, 넌 모자 쓰면 안 돼.
내가 안 어울린다고 몇 번이나 말하냐?”
농담처럼 흘린 말이었지만,
그 말은 공기보다 무겁게 가라앉아
내 마음속 깊은 곳에 돌덩이처럼 내려앉았다.
작은 말들이 하나씩 쌓여
결국 내 자존감을 조금씩 무너뜨렸다.
아이들을 돌보며 하루를 버텨내고
힘들다는 기색이라도 보이면 그는 비웃듯 말했다.
“집에서 애 키우는 게 뭐가 힘드냐?”
그 한마디는 하루 종일 쌓아 올린
내 노력과 시간을 단숨에 허물어뜨렸다.
“그럼, 당신이 해볼래?”
때로는 용기를 내어 받아쳤다.
“그럼 네가 나가서 돈 벌어 와.
내가 집에서 살림할 테니까."
그는 기다렸다는 듯 말하며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았다.
"대신 나만큼 벌어와.”
그 말 앞에서 나는 작아졌다.
설명해도 인정받지 못할 것 같았다.
말을 꺼내는 순간부터
이미 패배가 정해진 싸움 같았다.
아이들을 재운 뒤, 잠시 책이라도 펼치면
그는 또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집에 일찍 오면 뭐 하냐?
이렇게 딴짓이나 하는데.”
그 날카로운 말은 내 하루와 숨,
작은 쉼마저 가차 없이 찢어놓았다.
책장을 넘기던 손은 멈췄고,
마음은 다시 움츠러들었다.
조용히 접은 책 위로
말하지 못한 말들이 내려앉았다.
그렇게 하루가 차곡차곡 쌓였다.
거울 속의 나는 점점 낯설어졌다.
예전의 얼굴은 사라지고,
웃음과 자신감도 함께 흩어졌다.
내 안의 목소리는 작아져 갔고,
누구도 그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
나는 존재했지만,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무너져가는 나를 붙잡아 줄 손은
어디에도 없었다.
고요 속에서
하루가 또 하루를 덮어갔다.
그리고 나는, 조금씩 사라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