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 남편과 산다는 건

예순 번째 이야기

by 달빛여우



내가 기억하는 우리 가족은, 주말마다 가까운 뒷산이나 냇가로 소풍을 다녔다.


특별한 계획도, 대단한 준비도 없었다.


도시락 하나 들고

천천히 걷다 쉬고

물소리 들으며 웃고 돌아오는

그저 그런 하루들이었다.


고등학생이 된 뒤에도

그 습관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아빠, 이러다 나 대학도 못 가면 어떡해?”


불안해진 내가 투정을 부리면

아빠는 늘 태평하게 웃으며 말했다.


“대학 좀 안 가면 어때?”


“그럼 내 인생 아빠가 책임질 거야?”


내 말에 아빠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그럼. 아빠랑 평생 살면 되지.”


옆에서 듣고 있던 엄마는

아무도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때의 아빠 얼굴이 아직도 선하다.


장난 같지만, 진심이었고

가볍게 던진 말 같았지만

단단한 약속처럼 느껴졌다.


어느 날은 문득 이런 질문을 던졌다.


“아빠는 내가 뭐가 되면 좋겠어?”


아빠는 잠시도 고민하지 않고 말했다.


“뭐가 안 되면 어때?

그냥 네가 눈앞에 보이면 행복한데.”


내가 나여서.

내가 살아 있어서.


그저 내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행복하다는 그 말.


흔들릴 때마다,

지쳐서 바닥에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나는 그 말을 떠올렸다.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존재 그 자체로 이미 충분하다고 말해주던

그 한 문장.


아빠의 그 말 한마디를 겨우 붙잡고

나는 그날들을 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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