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여덟 번째 이야기
그러다 결국 다 무너져버린 날이 있었다.
작정하고 터뜨린 건 아니었다.
그동안 쌓아두었던 말들이,
참아왔던 감정들이
어느 순간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말을 하려는데
목소리가 자꾸 떨렸다.
울컥한 마음이,
눈물로 먼저 나와버렸다.
왜 이렇게까지 됐는지
나 스스로도 잘 모르겠는 얼굴로
나는 울고 있었다.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놀란 것 같기도,
당황한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이미 기운이 다 빠져 있었다.
한동안 들고 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몸에 힘이 풀렸다.
“잠깐 바람 좀 쐬고 올게.”
말을 하면서도 다리는 후들거렸고,
어깨는 축 처졌다.
그런데,
돌아오는 반응이 날카로웠다.
"그게 무슨 뜻이야?"
그 말엔 정말 아무 뜻도 없었다.
누굴 만나러 가는 것도,
어디 멀리 가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숨이 막혀서
잠깐 밖에 나갔다 오고 싶었을 뿐이다.
집 안에 가득 차 있던
답답한 공기를
조금이라도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돌아온 건,
비난 섞인 그의 목소리였다.
“애들을 두고 나간다고?
네가 엄마라는 걸 잊었어?”
순간 말이 막혔다.
동네 한 바퀴 돌고 오겠다는 말이
이런 말까지 들어야 할 일인가 싶어서였다.
마치, 내가 애들을 버리고
도망이라도 치겠다고 한 것처럼,
남편은 나를 몰아세웠다.
“그러니까 네가 모성애가 부족하단 거야.”
그 말은 생각보다 아팠다.
잔소리라기보다는
선을 넘는 말 같았다.
내가 어디까지 허락받아야 하는 사람인지
그 순간 분명해진 느낌이었다.
“당신도 아빠잖아. 집에 아빠가 있는데
내가 잠깐 나갔다 오는 게 왜 안 되는 건데?”
지금 같았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그 말이 나오지 않았다.
온몸이 쇠사슬에 묶인 것처럼,
그의 날 선 말 한마디에
나는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어느새 나는,
아주 작은 자유조차
내 마음대로 쓰기 어려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게,
그때의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