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 남편과 산다는 건

쉰일곱 번째 이야기

by 달빛여우



아이들은 아빠를 좋아했다.


일주일 내내 얼굴을 보기 힘든 사람,

매일 밤 아이들이 잠든 뒤에야 돌아오고

주말이면 집 안에 있으면서도 없는 사람처럼 잠만 자는 아빠를,


아이들은 그 모든 게 상관없다는 듯 사랑했다.


어쩌다 아빠가 일찍 들어오는 날이면

집 안 분위기가 먼저 달라졌다.


현관 쪽에서 철컥 소리가 나면

아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고개를 들었다.


하던 놀이는 그대로 둔 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달려 나갔다.


“아빠!”


그 소리에 집이 갑자기 살아나는 것 같았다.


아이들은 환하게 웃었고,

그 얼굴을 보고 있으면

하루 동안 쌓였던 피곤함이 잠깐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봤다.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다 말고,

거실 한쪽에 서서.


그러면, 마음 깊은 곳에서 질문들이 올라왔다.


‘너희에게 관심조차 주지 않는 아빠인데, 뭐가 그렇게 좋아?’


‘너희가 아빠를 이렇게 좋아하니까, 엄마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잖아….’


하지만 그 말들은 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아이들의 웃음은 너무 맑아서

그 웃음을 깨트릴 용기가 없었다.


그 웃음은 날카롭게 내 마음을 찔렀지만,

동시에 무너지는 나를 간신히 붙잡아주었으니까.


그래도 서운함은 남았다.

아이들이 저렇게 달려가는데도

남편은 아이들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았다.


안아주기는 해도 마음까지 다가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게 견딜 수 없이 원망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늘 한 발짝 물러서 있었다.


아이들이 아빠에게 매달리는 순간이면

나는 자연스럽게 뒤로 빠졌다.


그 장면 속에는

내가 끼어들 자리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벽에 기대 선 그림자처럼

환한 웃음과 따뜻한 목소리를

그저 바라보았다.


그렇게 살았다.

내 안의 나를 하나씩 지우면서.


아이들의 웃음 속에서만 숨을 쉬고,

그 웃음이 사라지면

나는 다시 고요 속으로 묻혀버렸다.


아무도 부르지 않는 이름처럼,

그냥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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