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 남편과 산다는 건

예순여섯 번째 이야기

by 달빛여우



내게 밤은 늘 길었다.


하루 종일 아이들과 부대끼고 나면

몸은 한계에 닿아 있었다.


하지만,


침대에 누워서도


“엄마, 책 읽어줘.”

“엄마, 물 먹을래.”


하는 말을 몇 번이나 오가고 나서야

불을 끌 수 있었다.


깜깜한 어둠이 방 안에 내려앉으면

아이들은 금세 잠이 들었다.


고른 숨이 나란히 흐르고,

이불이 오르내리는 걸 보고 있으면

그제야 하루가 끝난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고요 속에서

나는 더 또렷해지곤 했다.


몸은 분명히 지쳐 있었는데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눈은 감았지만

귀는 더 밝아졌다.


엘리베이터 멈추는 소리,

누군가 복도를 지나가는 발소리까지

전부 내 쪽으로 걸어오는 것 같았다.


괜히 상상하고,

괜히 마음이 상하고.


눈은 감고 있지만

마음은 잠들지 못한 채

밤을 보냈다.


기다리려고 한 건 아니었다.

정말이지,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도 몸은 솔직했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면

그제야 비로소 긴장이 풀리고

나도 모르게 스르륵 잠이 들었다.


운동을 시작한 뒤로

상황이 달라졌다.


공을 받아내느라 허둥대고,

몇 번이나 놓치고 다시 뛰고.


숨이 턱까지 차오르면서 땀을 쏟아내자

머릿속이 이상하리만큼 조용해졌다.


하루 종일 붙들고 있던 장면들,


‘왜 그랬을까’

‘괜히 그랬나’


곱씹을수록 부풀던 생각들이

조금씩 힘을 잃었다.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도 달라졌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질문과 장난에

예전엔 금세 지쳤다.


“잠깐만.”


그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했었다.


하지만 운동을 하고 나서는

한 박자쯤 더 버틸 수 있었다.


여유가 크게 생긴 건 아니었지만

금방 무너지지는 않았다.


함께 웃는 시간이 더 늘어서인지

집 안 공기도 전보다 한결 가벼워졌다.


어느 날 문득 알게 되었다.

초저녁부터 졸음이 밀려온다는 걸.


아이들을 재우다 내가 먼저 잠들기도 했고,

불을 끄자마자 기억이 툭 끊기기도 했다.


그렇게 그가 몇 시에 들어오는지

모르는 밤이 생겼다.


그리고 그 사실이,

이상하리만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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