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 남편과 산다는 건

예순일곱 번째 이야기

by 달빛여우



변화는

그렇게 소리 없이 스며들었다.


어느 날 아침,

세면대 앞에 서서 이를 닦다 말고

무심코 거울을 바라보았다.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들었을 뿐인데

문득 손이 멈췄다.


거울 속에

낯선 표정이 떠 있었다.


무엇이 다른지 몰라

눈을 가늘게 뜨고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알아차렸다.


나는,

웃고 있었다.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린 얼굴이 아니었다.


누군가를 안심시키기 위해,

분위기를 무너지지 않게 붙들기 위해

애써 만들어내던 웃음도 아니었다.


이유 없이,

설명 없이,

저절로 번져 나온 미소.


눈가의 힘이 풀려 있었고

늘 굳어 있던 이마가 한결 부드러워 보였다.

얼굴 전체에 옅은 빛이 감돌았다.


한동안 그 표정을 바라보았다.


언제부턴가 거울 속 나는

늘 지쳐 있었고,

어딘가 방어적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쉽게 상처받지 않기 위해

먼저 굳어버린 사람처럼.


그 자리에,

생기가 차오르고 있었다.


거창한 변화는 아니었다.


여전히 집에는 할 일이 많았고

나는 여전히

누군가의 아내이고 엄마였다.


하지만 그 틈 사이로

나를 위한 숨구멍 하나가 생겼다.


셔틀콕이 공기를 가르며 날아가듯,


막혀 있던 마음 한편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트이고 있었다.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기운.


겨울 끝자락,

아직 찬바람이 남아 있는데도

어디선가 먼저 스며드는

봄의 냄새처럼.


어느새 나는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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