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 남편과 산다는 건

일흔한 번째 이야기

by 달빛여우


대신 다른 것들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아이들과 마주 앉아 밥을 먹던 시간,

낮잠 들기 전 이마를 쓰다듬어 주던 순간,

괜히 거실에 앉아 쓸데없는 얘기로 웃던 저녁들.


아예 없어진 건 아닌데, 전처럼 여유롭지 않았다.


하루가 바빠질수록, 그 시간은 자꾸 뒤로 밀렸다.


아이들이 잠들고 나면

나는 한참 동안 그 얼굴을 바라보곤 했다.


고르게 숨 쉬는 소리,

이불 밖으로 나온 작은 손.


그 평온한 모습 앞에서


“잠깐만”이라고 미뤘던 순간들,

건성으로 대답했던 말투,

피곤하다는 이유로 미뤄둔 약속들이

서늘한 죄책감으로 몰려왔다.


‘오늘 나는 괜찮은 엄마였을까.’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괜히 혼자 대답을 찾게 되는 밤이 늘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에게 말했다.


같이 있는 시간이 줄어든 대신

더 많이 안아주고,

더 자주 사랑한다고 말하면 괜찮을 거라고.


그 말을 주문처럼 되뇌며

아이들 옆에 누웠다.


일을 시작한 이후로

나는 하루를 두 번 사는 것 같았다.


아이들 등원을 시키고,

회사에서 하루를 버티고


집에 돌아오면 설거지와 빨랫감,

아이 숙제와 준비물 사이를 오가며

예전보다 몇 배는 더 움직여야 했다.


그 날들 속에서

나는 여러 번, 작게 무너졌다.


그래도 완전히 주저앉지는 않았다.


몸이 고된 날에도,

아이에게 날카롭게 말해놓고 후회한 날에도,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날에도

나는 다시 내 자리에 앉았다.


누군가의 엄마로,

누군가의 아내로 살면서도

이름 석 자로 불리는 자리.


완벽하지 않아도,

모든 걸 다 잘하지 못해도

그냥 나로 있어도 되는 자리.


그 자리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나를 숨 쉬게 했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의 엄마이고 아내지만,

그게 나의 전부가 아니라는 게 좋았다.


출근한 지 몇 달이 지났을 때였다.

아침은 늘 그렇듯 정신이 없었다.


둘째는 이유도 없이 울고 있었고,

첫째는 현관에서 가방을 뒤적이며 말했다.


“엄마, 체육복 어디 있어?”


나는 순간 멈칫했다.


“엄마, 이거 왜 미리 안 챙겨놨어?”


말에 가시가 박힌 것처럼 심장을 콕콕 찔렀다.


안 챙긴 게 아니었다.

어젯밤에 분명 꺼내 두었다.

그런데 가방에 넣지는 못했다.


나는 설명하려다 말았다.

변명처럼 들릴까 봐.


“엄마 오늘 늦으면 안 돼. 일단 체육복부터 가져와.”


내 말에 아이 표정이 굳었다.


“맨날 그 말이야.”


그리고 조용히 덧붙였다.


“엄마, 요즘 자꾸 까먹어.”


첫째가 방으로 뛰어가며 남긴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크게 뭐라 한 것도 아닌데

그 말이 자꾸만 되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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