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 남편과 산다는 건

일흔두 번째 이야기

by 달빛여우



현관에 서 있던 나는 신발장으로 시선을 옮겼다.


괜히 먼지를 털고,

이미 가지런한 신발을 다시 맞춰 놓았다.


“엄마, 요즘 자꾸 까먹어.”


그 말을 듣고 나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예전에는 애쓰지 않아도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아 있던 것들이,

요즘은 자꾸만 빠져나갔다.


준비물, 알림장,

심지어 아이가 어제 해주었던 이야기도

적어두지 않으면 금세 흐릿해졌다.


나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아이는 체육복을 들고 와 내 앞에 내밀었고,

나는 말없이 받아 가방에 넣었다.


지퍼를 올리며 속으로 바랐다.

다음에는 조금 더 일찍 떠올리기를,

조금 덜 놓치기를.


하지만 동시에 알고 있었다.

나는 또 어딘가에서 무언가를 빠뜨릴지도 모른다는 걸.


현관문을 나서기 전,

몸을 숙여 아이와 눈을 맞췄다.


그리고 속으로 말했다.


엄마가 가끔은 까먹어도,

너를 사랑하는 마음만은

한 번도 잊은 적 없다고.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아이가 읽기를 바라면서.


그런데


뒤이어 들려온 아이의 한마디에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엄마, 회사 안 가면 안 돼?”


짧은 말이었다.

내가 대답을 찾기도 전에

아이는 먼저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르며 생각했다.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


예전처럼 온전히 곁에 머물며

살뜰히 챙겨주고 싶은 마음과


그만큼 쉽게 내려놓을 수 없는 일 사이에서

나 역시 종종 길을 잃는다는 것을


설명한다고 아이가 이해할 수 있을까.

서운함이 조금이라도 옅어질까.


그 생각이 마음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사실은 나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거창한 도움까지는 아니어도,

이런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 하나쯤.


하지만


남편은 그 모든 순간을

마치 배경처럼,

없는 사람처럼 살아갔다.


오로지 자기 자신으로.


내가 전업주부였던 날들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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