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 남편과 산다는 건

일흔세 번째 이야기

by 달빛여우



아이를 키우며 일을 병행하는 워킹맘은 많았다.

남편 말대로,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곁에 도움의 손길이 있었다.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가 아이를 맡아주거나,

잠시라도 손을 빌릴 수 있었다.


그게 아니면, 남편과 힘을 합쳐

등원과 하원을 나누어 맡았다.


아내가 바쁠 땐, 남편이 아이를 챙겼고

그마저도 어려울 땐, 서로의 마음을 나누며

하루의 힘듦을 헤아려주었다.


그들 속에서,

나는 내 모습을 더 선명하게 보았다.


일을 시작한 뒤, 남편은 한 번도 묻지 않았다.


적응은 잘하고 있는지,

어려운 점은 없는지.


매일같이 술냄새를 풍기고 들어오면서도,

다 회사 일의 연장이라는 말로 자신을 덮을 뿐,

도와줄 마음 같은 건 꺼내지 않았다.


한집에 살면서도, 타인과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지, 의문은 자꾸만 커져갔다.


그러던 중, 작은 일이 불씨가 되었다.


어린이집 종일반에 다니는 둘째는 끊임없이 병치레를 했다.


당시 유행하는 병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아이를 찾아왔다.


아이가 아플 때마다 회사에 양해를 구하는 일은,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를 만큼 어려웠다.


어느 날 오전 11시.

한창 바쁜 시간에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어머니, 바로 와주셔야겠어요.”


갑작스러운 말에 정신을 붙잡고 물었다.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아이가 수족구에 걸린 것 같아요. 모르셨어요?”


수족구라니.


나는 낯선 병명에 당황했다.


선생님은 아이 양말을 벗기다가

발목에 물집이 올라온 것을 보고 알았다고 했다.


요즘 들어 아이가 스스로 하겠다고 떼를 써서

옷과 양말을 챙겨주었던 게 떠올랐다.


분명 어제 씻길 때만 해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선생님은 내가 다 알면서도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것처럼 목소리를 높였다.


“방에 격리시켜 놓았으니까, 한 시간 내로 와주세요.”


아이가 혼자 방에 격리된 것도 마음이 아팠지만,

한 시간 안에 오라는 말에 심장이 내려앉았다.


며칠 전, 아이가 너무 아파 결근을 했던 나는

더 이상 회사에 사정을 봐달라 말할 수 없었다.


결국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만, 당신이 가줘.”


사정을 설명하고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차가웠다.


“난 못 가.”

“어떻게 매번 이래? 한 번쯤은 당신도 도와야 하는 거 아니야?”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래도 난 안 돼.

회사에서 사정 안 봐준다면, 그만둬.”

“뭐?”

“우리 둘 중 끝까지 일을 해야 하는 쪽은 나야.

그러니까 내 일에 지장 주지 마.”


내가 할 말을 고르는 사이,

남편은 전화를 끊었다.


짧은 신호음이 남은 자리에서,

나는 한동안 휴대폰을 내려놓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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