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 남편과 산다는 건

일흔네 번째 이야기

by 달빛여우



결국 나는 반차를 썼다.


팀장님의 시선이 너무 따가워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아무도 대놓고 뭐라고 하진 않았지만

서늘한 공기에 숨이 막혔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안아 들자,

작은 몸이 내 어깨에 폭 기대 왔다.


따뜻한 체온이 전해지는데,

이상하게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는 왜 이 장면에서 늘 죄인처럼 서 있어야 할까.


전업주부였을 때 그는 자주 말했다.


“집에 있으면서 뭐가 힘드냐.”

“하루 종일 애들이랑 놀면서

힘들다는 말은 좀 웃기지 않냐.”


웃으며 툭 던진 말들이었다.

그래서 더 따지지 못했다.


괜히 예민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그 말들이 가볍게 스쳐 지나간 척했다.


하지만 말은 생각보다 오래 남았다.


설거지를 하다가,

아이들을 재우고 불 꺼진 거실에 혼자 있을 때,

문득 그 문장들이 떠올랐다.


하루를 다 써버리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다.


그를 이해해보려 했다.


그는 늘 돈 이야기를 했다.

맞벌이하는 부부들을 부러워하면서.


나는 가정이 편안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그걸로는 부족한 것 같았다.


그래서 일을 시작했다.

적어도 돈 앞에서는 더 이상 작아지지 않으려고.


맞벌이가 되면 조금은 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달라진 건 내 하루뿐이었다.


출근 준비를 하면서 아이를 챙기고,

퇴근하면 다시 집안일이 시작됐다.


그는 여전히 바빴고,

피곤했고,

건드리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내가 힘들다고 말하면 분위기가 싸해졌다.


내가 전업주부이든, 맞벌이를 하든

결국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는 여전히 자기 자신을 먼저 두었고,

나와 아이들은 늘 나중이었다.


‘이혼’이라는 단어가 불쑥 떠올랐다.


하지만 바로 아이들 얼굴이 겹쳐졌다.


'내가 아이들의 세계를 흔드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닐까.'


그 생각이 다시 나를 붙들었다.


그러다 생각했다.


지금도 사실상 혼자서 아이들을 키우는 삶인데,

형식만 유지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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