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 남편과 산다는 건

일흔여섯 번째 이야기

by 달빛여우



두렵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사실은 모든 것이 두려웠다.


아이들과 앞으로의 삶,

당장 발 딛고 서야 할 현실.


그것들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시작한 뒤 몇 번의 월급을 받는 동안

쌓인 작은 자신감이,

내 결정을 지탱해 주었다.


금액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을 돌보면서도

일을 이어갈 수 있다는 사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다시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었다.


문득 엄마가 떠올랐다.

그 무렵 엄마는 일을 접고 집에 머물고 있었다.


엄마 곁으로 간다면

아이들이 갑자기 아프거나

예기치 못한 일이 생겨도

완전히 혼자는 아닐 것이다.


그 생각은

막막하게만 보이던 앞날 위에

조심스러운 길 하나를 그어 주었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 집착할 이유도 없었다.

계약직이었고, 월급도 넉넉하지 않았다.


친정이 있는 곳에서도

이 정도의 일자리는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결혼 8년 만에 마련한 아파트는

절반이 대출이었지만,


이혼 후 팔아 나눈다면

우리 셋이 몸을 누일 작은 집 하나쯤은

마련할 수 있을 터였다.


월급이 적으면 어떤가.

아직 어린아이들에게 들어가는 돈은 크지 않았다.


아이들과 함께 살 수 있다면

그 외의 것들은

대수롭지 않게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이혼하면, 아이들은 네가 키워. 네가 엄마니까.”


다투기라도 하는 날이면

그가 종종 하던 말이었다.


어차피 아이들에게 큰 관심도 없는 사람이니

양육권을 두고 다툴 일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하나하나 따져 보니

막연했던 두려움은

조금씩 형태를 잃어 갔다.


그토록 오래 망설였던 일인데

막상 결심하고 나니

모든 것이 생각보다 쉽게 느껴졌다.


그리고


어느 날 저녁,


“우리, 이혼해.”


말은 생각보다 고요하게 흘러나왔다.


마치 오래전부터 마음속에서

수없이 연습해 온 문장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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