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 남편과 산다는 건

일흔아홉 번째 이야기

by 달빛여우



집은 그의 이름으로 되어 있었다.


그 사실 하나로 그는

나의 지난 시간들을 모조리 무시하려 했다.


내가 어떤 시간을 살아왔는지,

어떻게 버텨왔는지는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이상하게도 화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고요해졌다.


“이혼하려거든 애들 데리고 그냥 나가.

여긴 내 집이니까.”


남편의 말은 내 마음을 흔들 수 없었다.

오히려 그 말 덕분에

내 결심은 더 분명해졌다.


“그건 안 되지.”

“왜 안 돼? 내가 힘들게 벌어서 산 집인데.

네가 뭘 했다고 집을 팔아서 나누냐?”


물론 신혼집을 시댁에서 얻어준 것도,

결혼 후 외벌이로 살아온 것도 맞다.


남편의 월급은 첫 월급의 두 배가 되었으니

그가 열심히 산 것도 인정한다.


그렇기에 나 역시 묵묵히 아이들 육아와

집안 살림을 도맡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집이 전부 그의 것일 수는 없었다.


“당신은 결혼 전에 채무가 있었고,

그걸 빼면 결혼할 때 내가 마련한 살림과

집을 구한 비용은 별반 차이가 없어. 게다가….”


우리는 그동안 세 번의 이사를 했다.


첫 번째 집은 빌라 전체에 도둑이 들었고,

두 번째 집은 집주인이 갑작스레 집을 팔았다.

세 번째 집은 준비했던 것보다 더 크게

전세금을 올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그의 월급이 올랐다고 해도

2년마다 전세금을 올려 이사를 해야 했고,

집을 산 뒤로는 대출금과 이자를 갚느라

월급이 올랐다는 걸 체감하지 못했다.


나는 그에게 이 말을 특히 강조했다.


“당신 월급으로 한 일이라면,

당신과 우리 아이들이 먹은 식비 정도였을 거야.”


100kg에 육박하는 남편은 대식가였다.


한 끼에 밥 세 공기는 기본인 데다

그가 유일하게 집에 있던 주말이면

9첩 반상을 차리라며 나를 닦달했다.


그를 닮은 두 아이들도

아이들답지 않게 잘 먹었다.


종갓집 맏며느리로

명절 설거지를 도맡아 하던 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작 네 식구가 먹은 저녁 식사 후,

명절에 온 친척들이 먹은 양처럼

쌓인 설거지더미를 보며

주저앉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시간과 노동, 보살핌, 마음의 무게는

결코 그의 계산 속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동안 다툼이 있을 때마다

나는 그의 억지에 굳이 맞서지 않았다.


함께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억울해도 입을 다무는 쪽을 택했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더 이상 참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니,

그동안 삼켰던 말들이

막힘없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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