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 남편과 산다는 건

여든 번째 이야기

by 달빛여우



“그리고, 우리 차 말인데….”


남동생이 유학을 떠나면서

동생이 타던 차도 우리 집으로 왔다.


중고여도 시세가 있는 중형차였다.

그리고 그 차를 여태 잘 타고 다닌 사람은

다름 아닌 남편이었다.


2년마다 치솟는 전세금을 마련하느라

속이 타들어 가던 내 마음을

엄마는 어떻게 알았을까.


어느 날 통장을 확인하다가

이사비 명목의 돈이 들어와 있는 걸 발견했다.


괜찮다고, 필요 없다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엄마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오래된 가전은 새것으로 바꿔주고,

내가 좋아하는 과일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택배로 도착했다.


그때, 문득 오래전 장면 하나가 떠올랐다.


첫째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엄마가 처음 우리 집에 오던 날이었다.


나는 아기를 등에 업은 채

아침부터 부엌에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엄마 입맛에 맞는 점심을 준비해 두고 싶었다.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온 엄마는

나를 잠시 바라보다가 인상을 굳혔다.


“아직 젊은 새댁이 왜 그러고 있어.”


나는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답했다.


“애 엄마가 다 그렇지. 뭐.”


엄마는 고개를 저었다.


“난 내 딸이 그러고 있는 거 싫어.”


그날 엄마는 나를 백화점으로 데려갔다.


집에서 살림하는 사람인데

이런 옷이 왜 필요하냐는 내 말에도

고가의 외출복을 사주고,

점심도 밖에서 먹자며 식당에 앉혔다.


그 후로 엄마가 우리 집에 오는 일은

1, 2년에 한 번, 많아야 두 번이었다.


하지만 올 때마다

옷을 사주고 필요한 것을 챙겨주며

마치 내가 아직도 보호받아야 할 아이인 것처럼

조용히 내 삶의 빈틈을 메워주었다.


시집간 딸이

남들 눈에 초라해 보이지 않기를

엄마는 오래도록 마음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게 이야기를 꺼내며

나는 새삼 깨달았다.


내가 그동안 엄마에게

얼마나 많은 신세를 졌는지.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그 마음을 이제야 온전히 이해하게 된 것이

오히려 마음을 무겁게 했다.


엄마가 이렇게까지 보살펴 주었는데도

내 결혼을 끝까지 지켜내지 못했다는 죄책감,

미안함과 고마움이 뒤엉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남들은 내가 남편 덕을 보고 산다고 생각할 수 있어. 하지만 적어도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는 거 아니야?”


말을 이어가면서

생각은 점점 또렷해졌다.


이 집이 누구 이름으로 되어 있든

이 집의 절반은 분명

내 몫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나는 이 집을 나눠 받을 자격이 있고,

내가 당신 월급 덕에 이득을 본 건 없다는 거야.”


나는 차분하게,

마치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사람처럼

하나씩 정리해 말을 마쳤다.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건 모두 사실이었으니까.


그걸 알면서도 그는 늘

맞벌이하는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며

내 가치를 깎아내리기 바빴다.


그래서일까.

그 사람과 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나를 편안하게 했다.


오랫동안 가슴에 쌓여 있던 무게가

천천히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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