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다섯 번째 이야기
눈물이 멈췄는데도
몸과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엄마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조용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수술과 항암치료를 앞둔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그 눈빛에는 불안이나 두려움이 없었다.
그저 잔잔하게,
내 마음을 지켜주는 사람처럼 고요할 뿐이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나이가 서른넷이고,
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인데도
난 여전히 엄마의 보호 안에 있다는 것을.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
평소처럼 말했지만
속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화장실 문을 닫고 나서야
겨우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찬 물로 얼굴을 씻고 고개를 들었을 때
거울 속에는 붉게 부은 눈이 그대로 있었다.
잠깐이었는데도
그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마치 죽었다가 살아난 듯,
그동안 나를 붙잡고 있던 생각들이 힘을 잃었다.
이혼과 앞으로의 삶에 대한 고민.
그렇게 중요하게 느껴지던 것들이
저만치 물러나 있었다.
대신 하나만 남았다.
엄마.
그 사실 하나로
복잡했던 마음이 차분해졌다.
밖으로 나오자
엄마가 침대에 누워 있었다.
늘 씩씩하던 사람이
힘없이 누워 있는 모습이 낯설어
가슴 한쪽이 천천히 조여왔다.
나는 말없이 다가가 손을 잡았다.
따뜻했다.
“많이 놀랐지?”
엄마가 먼저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담담하게 말하려 했지만
눈가로 번지는 감정은 숨길 수 없었다.
그래서 손에 힘을 주어
엄마의 손을 조금 더 단단히 잡았다.
“엄마는, 무섭지 않아?”
잠시 망설이다가 꺼낸 질문이었다.
“조금. 그래도 괜찮아.”
엄마는 내 손 위에 손을 겹쳐 올리며 말했다.
말보다 먼저 온기가 전해졌다.
그때 알았다.
이제는 내가 버텨야 한다는 것을.
“내가, 내가 옆에 있을게.”
말을 하고 나니
조금씩 정신이 돌아왔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
수술 날짜와 입원 일정, 검사 시간을 다시 확인했다.
차분하게 적힌 내용들이
읽을수록 현실이 되었다.
그래서 속으로 되뇌었다.
‘엄마만 살아 있으면 돼.’
엄마가 날 바라보는 눈빛이
지금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손을 놓지 않은 채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이제 나만 믿어.”
단호한 내 말에 엄마가 작게 웃었다.
“그래. 우리 딸이 있으니까 든든하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조금 놓였다.
두려움이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지금은 이걸로 충분했다.
엄마가 곁에 있고,
내가 그 옆에 있다는 것.
그걸로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