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여섯 번째 이야기
나는 회사에 사정을 말씀드렸다.
엄마는 수술을 앞두고 있었다.
복수가 가득 찬 몸으로
매일같이 받아야 할 검사들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지방에서 직장을 다니는 오빠도,
유학 중인 동생도
지금 당장 엄마 곁을 지킬 수는 없었다.
갑작스러운 결정이었다.
회사에 말을 꺼내는 내내
죄송한 마음이 목구멍에 걸려 내려가지 않았다.
책망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머니 수술 끝나면, 다시 나오는 게 어때?”
팀장님의 말에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런 제안을 들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회사 사정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책임감이 없다는 말을 들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의 여지를 건네받자
죄송함과는 전혀 다른 결의 감정이
가슴 깊은 곳에서 천천히 번졌다.
감사했다.
정말로.
그곳에서의 시간들이
나를 버티게 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 회사에서 일하며
나는 결국 이혼을 결심할 만큼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왔다.
하지만,
수술이 끝나면
곧바로 항암치료가 시작될 예정이었다.
몇 주 간격으로 이어질 치료들.
끝이 언제일지 가늠할 수 없는 시간.
몇 달이 걸릴지,
어쩌면 그보다 더 길어질지도 몰랐다.
그 제안을 붙잡을 수 없다는 걸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마음을 감사하게 여기며
그럴 수 없어 죄송하다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내 속도 모른 채 병원에 들렀다.
아무 일도 없다는 얼굴로,
언제나처럼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내게는 다정하게 말을 걸고,
엄마 앞에서는
세상 누구보다 걱정하는 사람처럼 앉아
손을 꼭 잡아드렸다.
그 손길이,
그 표정이,
낯설었다.
아니,
너무 익숙해서 더 견딜 수 없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모들은
흐뭇한 얼굴로 웃었다.
역시.
그래도 사위가 저렇게 잘하니 다행이다.
말하지 않아도
그 생각들이 그대로 느껴졌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이혼은
조용히 멀어졌다.
내 삶의 우선순위가
소리 없이 뒤집히는 순간이었다.
머릿속에는
오직 하나의 생각만이 남았다.
엄마를 살려야 한다는 것.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엄마의 손등에 꽂힌
가느다란 주삿바늘을 바라보았다.
투명한 관을 따라
천천히 떨어지는 액체.
그 느린 속도를 따라
내 마음도 함께 가라앉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결심했다.
지금은, 오직 하나.
엄마를 붙잡는 일에
나를 전부 쓰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