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 남편과 산다는 건

여든여덟 번째 이야기

by 달빛여우



수술이 끝난 뒤,

끝이 보이지 않는 항암치료가 이어졌다.


엄마와 나는

생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으려 애썼다.


하루를 버티며

‘내일은 나아지겠지’라는 마음 하나로

다시 하루를 시작했다.


하지만 희망은

손에 쥐려 할수록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나의 오만함을 인정했다.


나는 내가 엄마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정성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면

엄마는 다시 건강해질 거라고.


하지만 아이 둘을 키우며

암 환자를 돌보는 일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벅찼다.


하루가 어디서 시작되고

어디서 끝나는지도 모른 채

몸과 마음은 끝없이 닳아갔다.


그렇게 이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몸이 약해질수록

엄마는 점점 어린아이처럼 변해갔다.


위장이 다 상해 제대로 먹지 못하게 되자

먹고 싶은 것은 더 많아졌다.


나는 매일 엄마가 부르는 음식들을 준비했다.


정성을 다해 만들어서 가도,

미식가인 엄마 입맛엔 늘 조금씩 부족했고

결국 한 입도 먹지 못한 채 버려졌다.


마치 떼쟁이 아이 하나를 더 키우는 것 같았다.


어쩌다 병원에 들른 오빠는

내 부족함을 먼저 지적했다.


“네가 좀 더 잘 챙겼어야지.”


그 말은, 변명할 틈도 주지 않은 채

칼날처럼 박혀 더 깊은 상처가 되었다.


남편은 여전히 자기 일상을 살았고,

기댈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 세상에서 내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엄마였다.


그러니 아무리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할 곳이

어디에도 없었다.


힘들다고 느끼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일처럼 느껴졌다.


엄마에게 받은 사랑은 너무 컸고

나는 그걸 다 돌려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럴 수 없는 사람인 것 같아

죄책감이 따라왔다.


체력은 이미 바닥이었고

마음은 더 이상

버틸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모든 걸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때마다 나를 붙잡은 건

아이들이었다.


“엄마, 괜찮아?”


따스한 온기를 담은 그 한마디.


유일하게 나의 힘듦을 읽어주는 천사들이었다.


그렇게 나는

매일 무너지고,

또 매일 다시 일어섰다.


하지만 그 일어섬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내 안의 작은 불씨가

천천히 꺼져가고 있다는 걸 느낀 어느 날,


나는 잠들기 전

조용히 기도했다.


엄마가 아프지 않기를,

나도 아프지 않기를.


그래서 끝까지

엄마 곁에 있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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