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아홉 번째 이야기
그를 향한 미움은 이미 지나갔다.
원망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1년 동안
그는 나름의 역할을 하려 애썼고,
어떤 부분에서는 분명 노력했다.
남편으로서, 사위로서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라도
나는 그것으로
지난 앙금을 덮기로 했다.
엄마가
내 걱정까지 끌어안고 떠난 것은 아니라는 것.
그게 이유였다.
하지만
엄마를 잃은 슬픔과 상실감조차
설명해야만 이해받을 수 있는 관계라면
그 관계를 계속 이어갈 이유가 있을까.
그가 말하던
맏며느리로서의 도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흐르고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문 뒤라면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아니었다.
그 사실이
내 마음을 더 깊이 갈라놓았다.
그와 함께 산다는 건
내가 어떤 상태에 있든
그의 기준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가장 힘든 순간에도
나를 억지로 끼워 맞춰야 하는 삶.
더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때 떠오른 건
엄마가 남겨준 집이었다.
그 집을 떠올리는 순간
막혀 있던 숨이
서서히 트이는 것 같았다.
아이들과 다시 살아가라고
남겨준 것처럼 느껴졌다.
더는 미루지 않겠다고 마음먹자
모든 것이 단순해졌다.
“여긴 내 집이니까, 너만 나가면 돼.”
남편에게서 지겹도록 들었던 말이었다.
이제는 집을 나눠달라며
그에게 매달릴 이유도 없었다.
결혼 후 조금씩 모은 돈으로
전세금을 올려 마련한 집이었다.
그럼에도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것이라 말하는 사람과
더는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집 안이 눈에 들어왔다.
곳곳에 내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는데
여기가 더 이상
내가 머물러야 할 곳이 아니라는 생각.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정리되고 있었다.
망설임은 길지 않았다.
나는 옷장을 열고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