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 남편과 산다는 건

다섯 번째 이야기

by 달빛여우



대학교 3학년 여름,

친구를 따라 영어학원에 등록했다.


수업은 저녁 7시.

강의실은 고요했다.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었지만, 공기는 어쩐지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때, 문이 열리며 모자를 깊게 눌러쓴 남자가 들어왔다.

얼굴의 절반은 그림자에 가려 있었는데,

그가 내 옆에 앉는 순간, 강의실 분위기가 달라졌다.


아무 말 없이 자리에 앉아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그의 존재가 이상하리만치 크게 다가왔다.


그리고


‘아, 이 사람이구나.’

심장이 아주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속삭였다.


그 순간,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어릴 적, 나는 설거지를 하거나 빨래를 개는 엄마 곁에 붙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곤 했다.

엄마는 손은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귀는 열려 있었고, 가끔은 웃어주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마음속에만 품고 있던 질문을 꺼냈다.


“엄마, 나는 어떤 사람이랑 결혼하게 될까?”


엄마는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지금이 중요한 순간이라는 듯,

오래 기억될 대답을 준비하는 듯했다.


“그런 건 미리 걱정하지 않아도 돼. 결혼할 사람은 만나자마자 바로 알게 되거든.”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엄마 아빠는 그랬겠지만, 나는 아닐 수도 있잖아.”


엄마는 그저 웃었다.

마치 내가 아직 모르는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듯,

시간이 지나면 내가 그 말을 이해하게 될 거라는 듯.


그 웃음은 묘하게 단단해서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았다.


그리고 그날,

강의실에서 그가 내 옆에 앉았을 때,

나는 처음으로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


엄마가 말하던 ‘그런 사람’이 정말 존재한다면,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일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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