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에서 쫓겨난 명문대 유학생

첫 번째 목표 '1학기 회장'

by SOKU

"명문대 유학생", "대기업 출신", "금수저".

사회에서 누군가를 처음 만나 기본적인 정보를 서로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럽게 나 자신이 수식되는 단어들이다. 각자의 상황과 환경에 따라 다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이런 나의 수식어가 동경의 대상이 될 수 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부러움, 부러움을 넘어 재수가 없다고 생각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수식어는 어떨까?

"소아 천식으로 유치원에서도 안 받아준 아이", "매일 같이 학교에 부모님이 불려 가는 문제아", "가출을 밥 먹듯이 하고 다닌 사춘기 중학생".

앞선 수식어들과 상반된 이미지의 수식어이다. 하지만 어릴 적 그리고 학창 시절 나를 꾸미던 수식어이다. "겸손하게 말하네", "과장되게 말하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이다.


브런치를 통해서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은 단순히 나 자신을 과시하고 싶은 생각도 아니며, 현실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며 누군가에게 연민을 사려는 생각도 아니다. 특출 나게 부유한 가정환경은 아니었지만 여유가 있었기에 유학을 할 수 있었고, 유학을 하고 돌아왔기에 학벌을 중요시하는 국내 정서상 대기업에 취직할 수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은 꼭 유학이 아니더라도, 꼭 대기업 출신이 아니더라도, 조금 더 빨리 내가 하고 싶은 일과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한 길을 찾는다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하는 걸 말하고 싶을 뿐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나는 어릴 적 소아 천식으로 꽤나 고생을 많이 했다. 어쩌면 나보다 부모님이 고생을 많이 하셨다. 증상이 심할 때는 다니던 대학 병원에서 부모님께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될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다고도 한다. 그만큼 몸이 허약한 체질이다 보니 당연히 신체적으로도 다른 또래 친구들보다 왜소할 수밖에 없었다. 천식과 함께 있던 집먼지 진드기 알레르기 때문에 먼지가 조금이라도 있는 곳에서는 기침 증상이 더 심해져 유치원에서는 오히려 입학을 거부당하기까지 했다. 결국 유치원은 다니지 못하고 이른바 홈스쿨링을 하며 강제적인 격리생활을 했다. 그렇게 강제적인 격리생활을 끝내고 어쩌면 초등학교가 나의 첫 사회생활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며 지금 생각하면 당시 스스로의 자격지심이었을 수 있지만 다짐했던 한 가지가 있었다. "유치원 그까짓 거 안 다녀도 돼. 나는 여기서 누구보다 빠르게 적응하겠어." 그러면서 생각한 목표가 바로 '1학기 회장'이었다. '1학기 부회장'도 안되고 '2학기 회장'도 안되고 무조건 '1학기 회장'. 보통 3월에 입학을 하며 친구들과 서먹서먹한 사이에서 그 분위기를 사로잡아 누구보다 빠른 적응력을 보여주며 1학기 회장을 하겠다는 게 어린 시절 나의 목표였다. 그렇게 나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6년간 단 한 번도 빠짐없이 1학기 회장을 했다. 반에서 회장을 하며 자연스럽게 친구들과 체육활동도 열심히 했고, 이제는 어릴 적 천식이 있어 죽을 뻔했어요 라는 이야기는 아무도 믿지 않을 정도로 미친 듯이 축구를 하는 학생이 되었다.

이렇게 보면 초등학생 때부터 성실하게 스스로 목표 설정도 하고 질병도 극복한 멋진 학생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6년간 회장을 하며 극도로 외향적인 성격으로 변하고 어쩌면 친구들을 가리지 않고 사귄 탓(?)에 중학교에 입학하며 누구보다 사춘기가 심하게 오고 말았다. 어쩌면 지금까지도 부모님은 '중'이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는 걸 싫어하실 정도일까. 당시 숙제를 안 하거나 시험을 보고 틀린 개수대로 손바닥을 몽둥이로 때리는 체벌형 학원을 다녔다. 하루에 매 번 20대는 손바닥을 맞았던 것 같다. 이후 남동생이 같은 학원을 다니며 맞지 않고 집에 오는 모습을 본 부모님은 원래 매번 때리는 학원이 아니었다는 걸 그제야 아셨다고 한다. 숙제를 하면 되고 시험공부를 하면 됐지만 그냥 아무 이유 없이 하고 싶지 않았다. 공부를 해오지 않으면 체벌하겠다는 취지의 학원 방식은 나에게 그냥 안 하고 맞겠다는 형식으로 변형되어 버렸다. 체벌에 대한 반항심은 더욱더 변형되어 체벌 직전 창밖으로 가방을 던져두고 화장실을 잠깐 다녀오겠다고 하며 그대로 도망가버리기도 했다. 그렇게 중학교 시절 사춘기가 시작됐다. 물론 중학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도 1학기 회장은 계속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순수했던 어릴 적 적응을 빠르게 하겠다는 목적보다는 반에서 권력을 쥐겠다는 성질이 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성격 또한 반항적인 성격으로 변하면서 부모님의 훈계는 가출로 이어졌고, 학교에서는 친구들과의 싸움과 성적 하락으로 부모님이 학교로 불려 가기 일쑤였다. 학교로 얼마나 불려 다니셨으면 당시 친구들이 어머니와 더 친해서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고받기도 하고 가출을 할 때면 어머니가 친구들을 차에 태워 같이 찾으러 다니기도 하셨다. 절대 학창 시절 자랑이라고 떠들어대는 것이 아닌 나의 있던 모습 그대로를 쓰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이 끝나고 성대한(?) 졸업식을 위해 밀가루와 케첩을 준비하고 있던 나를 아버지께서 부르셨다. "일본 유학 가볼래?".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는 말이었지만 당시에는 "갑자기 미국도 아닌 일본 유학을 왜?"라는 생각이 앞섰지만 한 편으로는 흥미가 생겼다. '1학기 회장'에 이어 인생 두 번째 목표가 생긴 순간이었다.